한국원자력연구원 자연증발시설에서 방사성물질 방출 경로. 원자력안전위원회 제공
지난해 말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자연증발시설에서 발생한 극저준위 방사성 물질 방출 사고는 잘못된 시설 설치와 운영 미숙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잘못 만들어진 시설로 지난 30년간 지속적으로 방사성 폐기물이 방출됐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연구원 쪽은 잘못된 시설 설비 사실도 모른 채 30년동안 부실하게 운영해온 것에 대한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지난 1월 21일부터 실시한 ‘한국원자력연구원 자연증발시설 방사성물질 방출사건’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고, 이 같은 결과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원자력연구원에 통보했다고 20일 밝혔다.
원안위는 자연증발시설에서 방사성 물질이 방출된 근본 원인은 이 시설의 배수시설이 애초 과기정통부로부터 승인받은 설계와 다르게 설치·운영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원안위 조사결과 자연증발시설 지하에는 외부배관으로 연결된 바닥배수탱크(600ℓ)가 설치됐는데, 이는 당초 인허가를 받은 설계도에는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원안위는 이 시설이 운영을 시작한 1990년 8월 이후 30년 동안 매년 운전종료 시마다 바닥 배수탱크를 통해 지속해서 방폐물이 방출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그동안 시설 운전자들은 지하저장조(860,000ℓ) 외에 바닥배수탱크(600ℓ)가 별도로 설치된 상황을 몰랐고, 1층의 모든 배수구는 지하저장조와 연결되어 폐순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매년 11월 동절기 동파 방지를 위해 시설 운영을 중단하고 모든 액체 방폐물을 지하저장조(86만ℓ)로 회수하는 과정에서 1990년부터 연간 470∼480ℓ의 방폐물이 바닥배수탱크로 유입돼 외부로 누출됐다고 원안위는 밝혔다. 다만 방사성 물질 대부분이 우수관 표면이나 하천토양 등에 흡착됐고 이로 인해 2019년 4분기 이전에는 원자력연 외부 방사선 환경조사에서 특이점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26일 운전미숙으로 방출된 510ℓ는 10월∼11월 강수량으로 인해 방사성 물질의 일부가 부지 외부까지 흘러나간 것으로 조사됐다.
과기정통부는 이번 원안위의 조사 결과와 관련해 원자력안전법 등에 따라 행정처분을 검토해 조치할 계획이다.
반핵 시민단체인 '핵 재처리 실험 저지 30㎞ 연대'는 20일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 내 한국원자력연구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사성 물질을 방출한 원자력연구원을 폐쇄하라고 촉구했다. 연합뉴스
원안위는 원자력연의 1백여개 원자력·방사선이용시설의 인허가 사항과 시공도면이 현재 시설 상태와 차이가 없는지 전면조사를 하는 한편 연구원 내 환경방사선 조사지점을 확대하고, 방폐물 관련 시설의 운영시스템 등을 최신화할 것과 안전관리 조직의 총괄 기능을 강화하고, 외부 기관이 주관하는 안전문화 점검을 하는 등 시설 안전강화 종합대책의 세부이행 계획을 수립해 원안위에 보고하도록 했다.
또한 자연증발시설 등 핵연료주기시설에 대한 정기검사 횟수를 두 배로 확대하고, 원자력연에 대한 현장 상시점검을 위한 전담조직을 설치할 방침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