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여름 허리케인 찰리가 미국 플로리다주를 휩쓸었습니다. 뒤이어 폭리 논란이 불붙었습니다.
플로리다주 올랜도시에 있는 한 주유소에서는 2달러짜리 얼음주머니를 10달러에 팔기까지 했는데요. 우리나라에서 900원쯤 하는 생수를 4500원에 파는 것과 마찬가지겠지요.
폭리를 처벌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일자, 일부 자유시장 경제학자는 법 규제에 반대했습니다.
얼음 가격이 올라가면 시민은 소비를 줄이고, 제조업자는 얼음을 더 많이 만들어 필요한 곳으로 보낸다는 거죠. 이성이 작동하는 합리적인 시장이 이런 문제를 해결한다는 생각이었죠.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쓴 <정의란 무엇인가> 맨 처음에 나오는 사례입니다.
샌델은 이런 주장이 두 가지 이유에서 나온다고 얘기합니다.
첫째는 공급자를 북돋아 많은 사람이 원하는 물건을 부지런히 만들수록 사회 전체에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라는 겁니다.
둘째는 물건과 서비스를 교환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값어치를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샌델은 이런 주장을 정치철학자 시각으로 ‘박살’ 내는데요.
첫 번째 주장은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에서 비롯됐다고 말하며, 공리주의는 인간 삶에서 수치화할 수 없는 것까지 계량화하거나,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도록 강요하는 점을 비판합니다.
두 번째 주장은 존 롤스의 ‘자유주의’ 태도에서 비롯되었는데, 샌델은 돈만 내면 아이를 낳아주는 대리모처럼 서로 합의하면 괜찮다는 이런 태도는 잘못된 거라고 꼬집습니다. 자유주의는 사회구성원에게 위화감, 불공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샌델은 대안으로 공동체주의를 내놓습니다. ‘공동체 선’에 적극 참여하고 공동체가 요구하는 의무사항을 잘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코로나19로 마스크가 논란 중심에 선 지금 이 책을 다시 펼쳐보았습니다. 마스크값이 뛰어오르고 마스크를 사재는 곳이 늘어나자, 정부는 5부제로 가격과 수량을 통제했습니다.
그러자 여러 보수 인사는 정부가 시장에 강제로 개입해 생산과 가격을 통제하고 사회주의 국가처럼 국민을 줄 세우게 한다고 비난합니다.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2010년 5월 1쇄가 나온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유독 200만 부 이상 팔리면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물론 책을 끝까지 읽은 사람은 드물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책을 끝까지 읽으면 ‘마스크를 어떻게 다뤄야 정의가 설 수 있는지’ 알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한 분이 많은 듯합니다. 이 책이 나온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해법을 찾을 수 있는데요. ‘사회적 거리 두기’, ‘나는 괜찮으니 당신이 먼저’와 같은 서로 배려하는 시민의식이 샌델이 말하는 공동체 정신과 맞닿아 있는 것이죠.
정치철학이 골치 아프다면, 경제 논리로 따져 볼까요. 경제학은 한정된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걸 연구하죠. 물론 효율적 배분을 위해 최적화한 곳은 시장입니다.
하지만 시장과 돈으로 안 되는 게 있습니다. 공공재입니다. 국민건강, 국방, 치안 분야가 바로 그것인데요. 이성과 효율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정혁준기자
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