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막판 숨가쁘게 돌아갔던 금융통화위원회의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세 위원 중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로 분류되는 두 사람이 한국은행의 유연하고 적극적인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조심스레 밝혔다.
조동철 위원은 20일 이임사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쌓아 온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 한은의 명성이, 혹시 이제는 극복해야 할 레거시(유산)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운을 뗐다. 과거 고물가 시대에는 중앙은행들이 물가를 누르기 위해 싸워왔지만 이제는 돈을 풀어도 저물가가 지속되는 상황으로 변한만큼 코로나19 이후 들이닥칠지 모를 디플레이션과 싸울 대비를 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조 위원은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인플레이션 타깃팅(물가안정목표)이 시장과 소통 부족으로 잘 안된 점이 아쉽다”며 1990년대 말 ‘일본식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내비쳤다. 그가 이임사에서 “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행 완행’이라는 세간의 우려가 없는 안락한 열차가 되길 기원한다”고 밝힌 점도 같은 맥락이다. 한은의 물가안정목표는 2%이지만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4%로 역대 최저 수준에 머물렀다.
조 위원은 이어 “(한은의) 발권력은 절대 남용되지 않아야 하지만, 필요할 때 적절히 활용되지 못함으로써 작지 않은 사회적 손실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짚었다. 기준금리 인하와 같은 전통적 통화수단에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다. 조 위원은 <한겨레>와 통화에서도 “전통적인 통화정책이 점차 소진되면 비전통적인 수단으로 넘어가는 게 맞다”며 “재정과 통화정책의 경계가 무너지는 게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신인석 위원도 이임사에서 ‘새로운 중앙은행론’이라는 의제를 꺼내들며 “새로운 통화정책 수단과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생산, 성장률, 고용, 물가 등 많은 분야에서 경제환경이 크게 변모할 것”이라며 “변화한 환경에 맞는 중앙은행의 역할을 한은이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매파’(통화긴축 선호)로 꼽혀온 이일형 위원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임시 금통위 개최 등 긴박하게 움직였던 최근 상황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라며 “경제지표를 바탕으로 나름대로 최선의 결정을 내리려 노력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한광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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