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광현 국세청 조사국장이 23일 세종시 국세청사에서 고가 아파트를 사들이는 부동산 법인 전수 검증 착수 브리핑을 하고 있다. 국세청 제공
부동산업자 ㄱ씨는 지난 2017년 양도소득세 강화 등을 담은 8·2부동산 대책이 발표되자, 규제를 피할 목적으로 가족 이름의 부동산 법인을 여러 개 설립했다. 자신이 갖고 있던 고가 아파트를 현물출자 형식으로 가족법인에 모두 이전했다. 가족법인은 현물출자된 아파트를 담보로 추가 대출을 받아 지속적인 갭투자를 해왔고 총 300억원대의 부동산 투기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역 병원장 ㄴ씨는 20대 초반 자녀 이름으로 광고대행·부동산 법인을 설립했다. 이후 매달 자신의 병원 광고 대행료 명목으로 자녀의 부동산 법인에 수십억원의 허위 광고료를 지급했다. 자녀는 이 자금을 이용해 법인 명의로 20억원대의 강남 아파트를 사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아이티 회사를 운영하는 ㄷ씨는 단기간 수십억원을 벌어들이자 외주용역비 등 명목으로 회사 자금 수십억원을 빼돌렸다. 이후 별도로 1인 부동산 법인을 설립한 뒤 빼돌린 자금을 대여 형식으로 이 법인에 이전했다. ㄷ씨는 부동산 법인 명의로 한강변의 40억원대 아파트와 10억원대 외제차를 구입해 호화생활을 누린 것으로 조사됐다.
국세청은 최근 부동산 법인 설립이 급증하면서 편법증여 등 사례가 나타나자 고가 아파트를 산 부동산 법인 6754곳에 대한 전수 검증을 시작했다고 23일 밝혔다.
전수검증 대상은 1인 주주 법인 2969곳, 가족 법인 3785곳이다. 이 가운데 편법증여·규제회피 목적으로 탈루한 혐의가 포착된 27개 법인을 대상으로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임광현 국세청 조사국장은 “세무조사 과정에서 차명계좌 이용 등 고의로 세금을 포탈한 경우 수사기관에 고발하는 등 엄정 처리할 계획”이라며 “다주택자 규제회피를 위해 부동산 법인을 설립하는 경우도 아파트 양도차익에 중과세율을 적용하는 제도개선 방안을 관계부처에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올해 1~3월 개인이 법인에 양도한 아파트 거래량은 1만3142건으로, 지난해 전체 개인과 법인간 아파트 거래량(1만7893건)의 73%에 이른다.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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