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나면 응당 퇴고하는 것으로 배웠다. 대학 다닐 때 신춘문예에 응모하느라 긴 글을 처음 써보면서 퇴고가 왜 필요한지 알게 됐다. 몇 년 뒤 신문사에 들어와 보도사진을 찍다가 가끔 기사도 쓰면서 차츰 글 쓰는 속도가 빨라졌고 점점 퇴고하지 않게 됐다.
속도가 빨라진 이유는 글을 잘 써서가 아니라 마감 시간이라는 마법 때문이다. 신문사에서 마감 시간이란 어떤 한 작업의 다음 공정을 위해 정한 날짜와 시간에 넘기라는 뜻이다. 그 시간까지 안 넘기면 차례로 밀려 신문 발행이 늦어지는 대형 사고가 나니 마감 시간은 대단히 중요하다.
일찍 마감하면 퇴고할 시간 여유가 생길 것 같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예를 들어 원고지 10장을 쓰는 데 5시간이 걸린다고 하자. 오후 5시 마감을 앞두고 오전 10시부터 쓰기 시작하면 다 쓴 글을 검토할 시간이 두 시간이나 난다.
그런데 마감 시간의 마성은 이면이 더 강하다. 오전 10시엔 전혀 글을 쓸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낮 12시가 되면 겨우 노트북 자판에 손을 얹어보지만 지지부진하다. 오후 3시나 4시가 돼야 마음이 급해지면서 손놀림이 빨라진다.
통상 2분 정도를 남겨서 끝낼 수 있고, 그 2분 동안 퇴고는 꿈도 못 꾸고, 띄어쓰기나 오·탈자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맞춤법 검사’를 돌린다. 대학 때는 한글학자 미승우 선생이 쓴 책을 보며 우리말 실력을 키우고 맞춤법에도 꽤 능숙한 편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한글 프로그램이나 신문사 기사 입력기에 있는 맞춤법 검사에 의존하면서 실력이 퇴보하고 있다.
어쨌든 맞춤법 검사 프로그램도 갈수록 진화해, 마감 시간이 빠듯한 경우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여기까지 쓰고 한 번 돌려봤다. 띄어쓰기에서 몇몇 오류가 있어서 바로잡았다).
맞춤법 검사를 돌리다가 배꼽을 잡은 일이 몇 번 있었다. 마감을 코앞에 두고 1분 1초가 아까운데 폭소가 터져서 10초 정도 킥킥거렸다. 맞춤법 검사 프로그램은 각각 ‘여수범퍼’ ‘어머니뉴스’ ‘시너’로 고칠 것을 권유했다. 원래 단어는 ‘여수밤바다’ ‘오마이뉴스’ ‘신나게’였다.
전혀 봄 같지 않게 봄이 왔다. 이런저런 사진 촬영을 하러 지인들과 제주도를 다녀왔다. 길지 않은 일정에서 잠시라도 한라산 정상을 말끔하게 볼 수 있었다.
글·사진 곽윤섭 <한겨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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