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8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한 것은 코로나19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예상을 뛰어넘어 더이상 실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금리를 더 내릴 수 있는 ‘정책 여력’이 줄어든 만큼 추가적인 경기 악화에 대비해 한은도 국채를 적극적으로 사들여 시장금리 하락을 유도하는 ‘양적완화’와 같은 다각적 정책수단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직후만 해도 “올해 한국 경제가 1%대는 어렵겠지만 플러스성장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0%대 성장률을 전망한 것이다. 하지만 다소 낙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국제기구나 투자은행(IB)들 사이에서는 이미 마이너스성장을 전망하는 기관이 적지 않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14일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1.2%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신용평가사인 무디스(-0.5%)와 피치(-0.2%)도 한국 경제의 역성장을 예상했다. 국내 기관인 한국금융연구원도 올해 경제성장률을 -0.5%로 예상했다.
한국의 1분기 성장률은 전기 대비 -1.4%로 떨어졌다. 수출과 투자의 감소가 본격화하고 있는 2분기에는 마이너스성장 폭이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 수출과 성장률에 영향을 주는 미국과 유럽의 경제가 더 큰 폭의 역성장으로 치닫고 있어서다. 한국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은 아예 올해 성장률 목표 수치를 내놓지도 못했다.
경기침체 속에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우려도 점차 커지고 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 4월 근원물가(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는 1년 전보다 0.1% 오르는 데 그쳐 1999년 12월(0.1%) 이후 20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 26일 한은이 발표한 5월 기대인플레이션(국민의 물가상승률 전망)은 1.6%로 사상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날 ‘저인플레이션의 원인과 경제정책의 유효성’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와 고용여건의 급격한 악화가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전례없는 경제위기를 맞아 통화정책이 재정정책과 더욱 긴밀하게 공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기업안정화대책과 고용안정특별대책, 세입경정 등을 위한 3차 추가경정예산안을 새달 초 편성해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규모는 30조원이 넘을 것으로 관측된다. 한은의 적극적인 역할에 대한 주문이 나오는 배경이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한국으로서는 미국의 기준금리(0~0.25%)를 고려할 때 금리를 추가로 0.25%까지 낮출 경우 자본유출 등 부작용이 더 커진다는 이른바 ‘실효하한’ 문제로 고민 중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아직까지는 마이너스 금리 도입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한은이 금리를 독자적으로 내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최근 영국 등에서 마이너스 금리 정책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고 있어 상황에 따라 연내 추가 금리인하가 가능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한은이 시장 안정을 위해 대규모 국채 매입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진일 고려대 교수(경제학)는 “올해 코로나19 사태로 많은 나라에서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수행하고 있다”며 한은도 이를 도입할 것을 제언했다. 장민 선임연구위원도 “(국채매입 규모와 일정을 사전에 알리는) 선제적 지침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주열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3차 추경 편성 등으로 국고채 발행이 급증해 금리 변동성이 크게 확대될 경우 국고채 매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다만 국채 매입 정례화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계획을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며 “다양한 시장 안정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만 답했다.
한광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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