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을 화두로 빅데이터와 제조, 서비스 분야의 국내 주요기업 간 협력 움직임이 활발하다. 1, 2위 통신기업 주도로 양대 협력축이 형성되고 있는 가운데 삼성·엘지(LG)의 접근 방식과 네이버의 전략이 미묘하게 엇갈리고 있다. 국내 영업 기반의 통신사들은 협력체 결성에, 글로벌 수준에 이른 전자기업들은 신중한 태도를, 빅데이터를 보유한 최대 인터넷기업은 독자 전략을 지향한다.
3일 케이티(KT), 엘지전자, 엘지유플러스는 서울 종로구 케이티 광화문빌딩에서 인공지능 사업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이 자리에는 3사 최고기술책임자(CTO)와 사업부문장이 참석했다. 구현모 케이티 사장은 지난 2월 인공지능 관련한 산·학·연 협력체를 제안해 케이티, 현대중공업그룹,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한양대, 전자통신연구소(ETRI) 등 5곳이 참여하는 ‘AI 원팀’을 꾸린 바 있다. 여기에 엘지전자와 엘지유플러스가 동참하는 모양새다. 참여기업들은 협력을 통해 각 사업영역에서 제품·서비스·솔루션 성과를 만들고, 산·학·연 인재양성 플랫폼 구축에 나설 계획이다.
사실 인공지능 협력 모델은 에스케이텔레콤(SKT)이 먼저 쏘아 올렸다. 박정호 에스케이텔레콤 사장은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서 “글로벌 인공지능(AI) 경쟁에서 국내 관련 기업끼리 힘을 합치자”며 ‘AI 초협력’을 앞서 제안했다. 뒤이어 에스케이텔레콤-삼성전자-카카오간 ‘AI 동맹’이 만들어졌다. 3사는 세부 협력내용은 밝히지 않고 있지만 각자 서비스해오던 인공지능 음성비서(아리아, 빅스비, 카카오)의 통합 작업 등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스케이텔레콤과 카카오는 지난해 10월 3000억원 규모의 지분을 맞교환한 바 있다. 양사의 협력 수준이 꾸준히 강화되어 온 셈이다.
삼성전자는 인공지능 선행 연구개발 인력을 올해까지 1000명 이상(국내 600명, 국외 400명)으로 늘릴 계획을 밝히는 등 인공지능에 무게를 싣고 있지만, 에스케이텔레콤-카카오와의 ‘AI 초협력’ 내용이나 진전 사항을 언급하는 데 신중하다. 세계 시장에서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면서 글로벌 테크(기술)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삼성으로서는 입 조심을 해야 할 형편이다. 엘지전자도 비슷한 상황이다.
국내 최대 인터넷기업 네이버는 ‘독자 노선’을 걷고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네이버의 인공지능 플랫폼 ‘클로바’는 개방돼 있어서 요청이 있으면 어디와도 협력이 가능한 모델”이라고 밝혔다. 이미 30여곳 이상의 기업들과 제휴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엘지유플러스가 클로바 플랫폼을 사용해 음성비서 서비스를 하는 게 한 사례다.
네이버는 연구개발 강화를 통한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글로벌 인공지능 연구벨트’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 3월 일본 자회사 라인이 보유한 현재 100명 수준의 인공지능 연구개발 인력을 내년까지 200명으로 늘린다고 발표했다. 2017년엔 미국 제록스로부터 유럽의 주요 인공지능 연구소인 ‘제록스리서치센터유럽’(XRCE)을 인수해 80여명의 핵심 연구인력을 확보한 바도 있다. 베트남 대학들과도 인공지능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네이버 쪽은 “인공지능 협력이 국내에 한정되는 게 아닌 만큼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 맞서기 위한 대응을 하고 있으며 국내외 협력에 개방적이다”라고 말했다.
구본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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