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 푸르보요(Ari Purboyo) 인도네시아선원노조 한국대표가 지난 1월 서울 종로구 걸스카우트빌딩에서 열린 ‘어선원 이주노동자 인권실태 모니터링 집담회’에서 어선원 이주노동자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수년째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주어선원들의 노동권 및 인권 침해 실태에 대해 정부가 사과의 뜻을 밝히고 대책을 내놨다. 주요 송출국과 협정을 맺어 사실상 이주어선원의 송출과 송입을 공공이 관리하고, 이주어선원 현장조사 때는 시민단체와 함께 해경이 참여토록 해 인권침해를 저지른 선주에 대해서는 해기사 면허 취소 등 처벌을 강화하기로 했다.
9일 해양수산부는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이같이 밝혔다. 이 자리에서 김준석 해수부 해운물류국장은 하루 전날인 8일 선원이주노동자네트워크가 공개한 인권침해 실태조사 결과에 대해 “이주어선원 인권 보호에 미진한 부분이 있었던 데 대해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며 “우리 국민 역시 1960년대부터 주요 선원 송출국으로 모진 역경 속에 외화 벌어서 오늘날 경제 성장을 이룬 점을 생각하면 한국에서 근무하는 이주어선원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한다”고 밝혔다. 선원이주노동자인권네크워크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16년~2019년 한국원양어선에서 일했던 이주어선원 54명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6.9시간에 달했으며 이들 중 41%는 한달 임금으로 500달러(약 60만원)도 받지 못한다고 응답했다.
해수부는 우선 이주어선원을 많이 보내는 국가의 정부와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형태로 공공이 관리하는 이주어선원 인력풀을 만들기로 했다. 일종의 공공송출제다. 그동안 민간의 인력송출업체가 이주어선원을 한국에 보내주는 대가로 지나치게 많은 송출 수수료(송출비용)를 요구하거나 땅 문서나 학위증 등을 이탈보증금으로 요구하는 악습을 끊기 위한 조처다. 김준석 해수부 해운물류국장은 “국내 송입 이주어선원의 35%를 차지하는 인도네시아 정부와는 상반기부터 채널을 확보하고 양해각서 체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라며 “향후 베트남, 필리핀, 미얀마 정부와도 접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주어선원 실태점검을 기존 연간 1회에서 2회로 늘리고 실태점검에는 기존 근로감독관에 더해 해경도 참여토록 했다. 인권침해 행위로 실형이 확정된 선주에게는 이주어선원 배정을 제한하고 해기면허 취소까지 가능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열악한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그동안 숙소 기준이 없었던 20톤 이상 어선에 대해서도 숙소 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지난해 조성된 1700억원 규모의 안전펀드를 지원한다. 안전펀드를 이용하면 선주들은 10% 자부담으로 노후선박을 새로 건조하거나 선령이 낮은 배로 교체할 수 있다.
해수부는 특히 원양어선에서의 휴게시간 보장이나 최저임금 보장 등 노동권 보장과 관련해 국제노동기구 어선원 노동협약(C.188) 비준을 적극 검토한다고 밝혔다. 다만 김 국장은 “원양어선의 경우 어군 탐지 기간이 길고 실제 어획하는 시간을 조절하는 게 어려워 육상에서처럼 똑같은 노동조건을 적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협약을 국내 적용하려면 원양 어선의 조업 실태를 면밀히 파악해야 하는 문제가 있어서 현재 연구 용역 중”이라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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