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버’를 창업해 초기 디지털 음악재생기 시장을 제패했던 양덕준씨가 지난 9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0. 양씨는 1999년 아이리버의 전신인 레인콤을 창업해, 엠피3(MP3) 플레이어 분야에서 뛰어난 기술력과 디자인으로 초기 시장을 제패하며 성공신화를 쓴, 벤처 1세대의 대표인물 중 한 사람이다.
세계 첫 상용 엠피3 플레이어는 국내에서 새한그룹에 의해 출시된 ‘엠피맨’이지만, 실질적으로 엠피3 플레이어 시장을 창출하며 성공을 이룬 것은 ‘아이리버’였다. 삼성반도체 수출담당 이사를 지내다 퇴직해 아이리버를 설립한 양덕준씨는 2000년대 초반 ‘벤처신화’를 일궜다.
1999년 자본금 3억 원, 직원 7명으로 시작한 레인콤은 이듬해 세계 최초로 멀티 코덱이 가능한 시디(CD) 플레이어를 개발했고, 2002년엔 엠피3 파일과 시디를 동시 재생하는 플레이어를 개발하는 등 이 분야 기술을 개척하며 디지털 음악 시장을 키웠다. 2004년 당시 아이리버는 454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엠피3 플레이어 국내 시장의 75%, 국외 시장의 25%를 점유하는 절대 강자로 군림했다.
승승장구하던 엠피3 플레이어의 절대강자는 애플이 2003년 혁신적인 음원관리 소프트웨어 아이튠스를 개발하고 이와 연계한 엠피3 플레이어 아이팟을 소형화해 출시하기 시작하면서 위기에 몰렸다. 당시 아이리버는 뉴욕 등 세계 곳곳에 “사과보다 더 달콤하다”며 사과를 깨물어 먹는 애플 비교광고를 실으며 공격적으로 대응했지만, 속절없이 추락해 부도위기에 몰렸다.
양덕준씨는 자신이 창업해 대표를 지낸 아이리버를 2008년 떠나 민트패스를 창업하고 태블릿 열풍에 대응하는 휴대용 다목적 소형 태블릿기기 민트패드를 개발해 출시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다기능 고성능 스마트폰이 별도의 메모용 휴대단말기를 불필요하게 만들었다. 아이리버는 이후 경영난에 몰리며 전자책 단말기, 고품질 음악재생기(아스텔앤컨) 등으로 재기를 시도했지만 어려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이리버는 2014년 에스케이텔레콤에 인수되고 2019년엔 드림어스컴퍼니로 개명했지만, ‘아이리버’ 브랜드를 유지하며 아스텔앤컨 등 제품을 내놓고 있다.
아이리버는 뉴욕, 도쿄 등 세계 곳곳에 애플 아이팟을 겨냥한 비교광고를 내며 적극 대응에 나섰으나 생태계를 갖춘 애플에 무너졌다.
양씨는 2009년 뇌출혈을 겪은 뒤 투병하면서 재기의 꿈을 키워왔지만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지난 9일 숨졌다. 양씨의 ‘아이리버 신화’는 지속되지 못했지만, 그가 신기술 개발과 창업을 통해 일궈낸 벤처정신과 문화는 이후 국내 정보기술업계의 자양분이 됐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1호실에 차려졌으며, 발인은 11일 오전 7시다. (02)3010-2261
구본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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