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정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쓴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에서 나그네는 노랗게 물든 숲속 두 갈래 길에 서 있다. 두 길을 갈 수 없는 나그네이기에 한 길을 선택한다.
오랜 세월이 흘러 나그네는 어디에선가 한숨지으며 이렇게 얘기하리라. “숲속 두 갈래 길에서 한 길을 선택했고, 그 선택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고.
코로나19는 우리 일상을 바꿔놓았다. 프로스트가 쓴 시에 나오는 나그네처럼 우리에게 가보지 못한 길을 선택하도록 이끈다. 코로나19 이후 세계 경제는 어떤 흐름을 맞게 될까?
많은 사람이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계속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으로 접어들 거라고 얘기한다. 코로나19로 수요가 줄고, 이에 맞물려 투자가 감소하고 결국 실업이 늘어난다. 이런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거다.
다른 길을 얘기하는 사람도 많다.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오르는 ‘인플레이션’을 말한다. 여러 나라는 자국 경제를 위해 경기 활성화에 나설 것이다. 마스크 공장조차 없다는 비판을 받은 나라가 중국산 마스크를 수입하는 대신 자국에 마스크 공장을 세우는 식이다. 마스크 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제품을 직접 만들려는 의지는 그 어느 때 보다 높다.
코로나19로 전세계 공급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저물가를 받쳐온 공급요인에 차질이 생겨 물가는 오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어떤 길을 가게 될까?
또 다른 길을 보자. 복지와 신자유주의의 갈림길이다.
요즘 점심 먹을 때 식탁 위에 자주 올라오는 얘깃거리는 ‘긴급재난지원금’이다. 어떻게 받고 어디에 썼는지 서로 정보를 교환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를 예고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논의가 ‘복지국가’로 이어지는 트리거(방아쇠)가 될지 관심이 쏠린다. 내가 낸 세금이 4대강 사업처럼 헛되이 쓰이지 않고,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면 많은 이가 복지에 더 세금이 쓰이길 원할 것이다.
물론 다른 길도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신자유주의’가 더욱 공고히 되리라는 얘기다. 미국은 양적완화(중앙은행이 통화를 시중에 공급해 경기를 부양하는 통화정책)로 달러를 살포하고 있지만, 위기가 심해질수록 안전한 달러는 강세를 보인다. 넘쳐나는 유동성은 주식과 부동산 같은 자산가격을 밀어 올려 빈부격차가 더 심해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우리는 이런 현상을 경험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는 <이코노미 인사이트> 10돌을 맞아 한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사태는 신자유주의를 바꾸는 계기”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는 앞에 놓인 여러 길에서 계속 머무를 수 없다. 정부는 선택을, 국민은 합의해 한 길을 선택해야 한다. 프로스트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라고 말한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라는 시 마지막에 이렇게 얘기한다.
눈 오는 숲속 저녁, 농부는 눈 내리는 정경을 바라보고 싶지만 지켜야 할 약속이 있기에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을 떠난다.
정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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