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재계 총수들과 잇따라 ‘배터리 회동’을 가지면서 현대차의 친환경차 전략에도 다소간의 변화가 있는 것 아니냐는 궁금증을 낳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정부와 함께 추진해온 수소전기차에서 한발 빼는 대신 당분간은 배터리 전기차에 ‘올인’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 잇따른 배터리 공장 방문 행보
22일 현대·기아자동차와 엘지(LG)화학의 설명을 종합하면,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이날 오전 충북 청주시에 위치한 엘지화학 오창공장을 찾았다. 알버트 비어만 현대·기아차 연구개발본부 사장, 김걸 기획조정실 사장, 서보신 상품담당 사장, 박정국 현대모비스 사장이 참석했고, 엘지 쪽에서는 구광모 회장과 권영수 부회장, 신학철 엘지화학 부회장, 김종현 전지사업본부장, 김명환 배터리연구소장이 자리했다.
양쪽 경영진은 사업장을 둘러본 뒤 엘지화학이 개발 중인 장수명 배터리와 리튬-황 배터리, 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 현황에 대해 논의했다. 오창공장은 엘지화학의 국내 최대 배터리 생산기지로, 이곳에서 생산하는 배터리는 현대차의 코나와 아이오닉 모델 등에 들어간다.
이날 방문은 정 부회장이 한 달여 만에 두 차례 배터리 사업장을 직접 찾은 것으로, 업계에서는 이례적이라는 말이 나온다. 정 부회장은 앞서 지난달 13일 충남 천안 삼성에스디아이(SDI) 사업장을 찾아 이재용 삼성 부회장과 전고체 배터리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조만간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 쪽과도 만날 계획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의 관심분야가 수소전기차에서 배터리 전기차로 옮겨가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을 만한 이례적 행보다. 이와 관련해 현대차 관계자는 “사내에서도 수소차나 수소연료전지시스템의 판매 목표량이 너무 높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며 최근의 분위기를 전했다.
■ 수소전기차 생산 목표량 낮춰
실제로 현대차는 최근 수소전기차 생산 목표량을 애초 계획보다 감축한 것으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발표한 ‘수소전기차(FCEV) 비전 2030’에서는 2025년에 연간 13만대를 생산하겠다고 했는데,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5 전략’에서는 이 목표를 연간 11만대로 수정했다. 1년 만에 목표 수치를 15%가량 낮춘 것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중장기적으로는 수소전기차 양산 계획에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단기적인 계획에 수정이 있었던 것은 맞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 세계 전기차 경쟁이 심화된 만큼 당분간은 수소차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해외 기업들이 앞다퉈 전기차 분야 투자를 늘리고 있는 점도 현대차에는 고민거리다. 제너럴모터스(GM)는 향후 5년간 전기차·자율주행차 개발에 200억달러(약 24조원)를 투자한다고 지난 3월 밝혔다. 폴크스바겐도 최근 중국 배터리 기업 궈쉬안 하이테크를 인수하는 등 공격적 행보에 나서고 있다.
앞으로 전기차 전환이 가속화되리라는 전망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풀이된다. 블룸버그 뉴에너지파이낸스(BNEF)는 최근 발표한 ‘2020 전기차 전망’에서 2025년에는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이 850만대, 2040년에는 5400만대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수소차를 완전히 놓지는 못할 것”이라면서도 “시장의 흐름이 전부 전기차를 가리키고 있는 상황인데 그런 흐름을 무작정 외면할 수도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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