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화웨이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제재가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미국 통신시장에서 국내 업체로는 최대 규모의 통신장비 공급계약을 따냈다. 삼성전자가 세계 5세대(5G) 통신장비 시장 지배력을 키울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7일 오전 “버라이즌과 7조9000억원(66억4000만달러) 규모의 네트워크장비 장기 공급계약을 맺었다”고 공시했다. 버라이즌은 미국 1위 통신사업자이자 세계 이동통신 매출 1위 사업자이다. 삼성전자가 버라이즌에 2025년 12월까지 5년 반 동안 5세대(5G) 통신장비를 포함한 네트워크 솔루션을 공급하고 설치·유지·보수를 맡는 게 계약의 주요 뼈대이다. 국내 통신장비 공급 사상 최대 규모의 단일 수출계약으로 평가된다.
삼성전자는 이번 계약으로 세계 최대 이통시장이자 세계 기지국 투자의 20~25%를 차지하는 미국 시장에서 주요 장비 공급업체로서 인정받고, 향후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 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보안 위협을 이유로 화웨이를 배제한 미국 통신장비 시장에서 1위 사업자의 기술·보안 검증을 통과한 이번 계약은 5세대망 구축을 추진하는 각국 시장에서 삼성이 화웨이의 대안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낳는다.
30여년 전 통신장비 시장에 진출한 삼성전자는 2009년부터 5세대 기술과 장비 개발에 뛰어들어 기술 표준을 주도해왔지만 지난 1분기 현재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13.2%로 세계 4위에 그친다. 통신망 구축은 단일 부품만이 아니라 기존 네트워크와의 연계성, 기술지원, 안정성 등 복합적 통신 운용능력이 고려돼야 하는 터라, 풍부한 구축 사례가 부족한 삼성전자로선 힘든 시장 환경이었다.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의 80% 가까이를 화웨이·에릭슨·노키아 등 ‘톱3’가 과점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에서 엘지(LG)유플러스가 논란에 불구하고 일부 지역의 5세대 장비에 화웨이 제품을 사용한 데에는 해당 지역의 4세대(LTE)망을 화웨이 장비로 구축한 것도 주요 이유였다.
하지만 이런 시장 구조는 미국의 중국 제재 본격화로 흔들리고 있다. 영국과 캐나다,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등이 잇달아 5세대망투자에서 화웨이를 배제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번 계약을 두고 삼성전자가 글로벌 시장에서 앞으로 커질 화웨이의 빈자리를 메울 수 있는 유리한 레퍼런스를 추가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삼성전자는 2018년부터 미국의 스프린트를 시작으로 버라이즌, 에이티앤티(AT&T)로 5세대 장비 공급처를 차츰 확대해왔으며, 올 들어서는 일본(KDDI), 캐나다(텔러스), 뉴질랜드(스파크) 등 여러 나라로 구축 사례를 넓혀가고 있다. 특히 이번 버라이즌 공급은 기존 사례와 달리, 네트워크 구축·유지·보수를 포함한 대규모 장기간의 계약이라는 주목받는다. 이승웅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버라이즌과의 대규모 계약으로 삼성전자는 목표대로 글로벌 5세대 통신장비 시장에서 주요 사업자로 점유율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5세대 네트워크 장비는 국내 중소 부품회사 86개사와 협력해 제조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수주가 확대될수록 국내 중소기업들의 매출 확대와 고용 창출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5세대 장비 국산화 율은 40~60% 수준이다.
구본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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