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성 ㅣ 산업부장
19세기 초 식민세력을 몰아내고 세계 최초의 흑인 공화국을 세운 카리브해의 생도맹그(지금의 아이티)는 식민모국 프랑스에 외려 큰 빚을 져야 했다. 이유가 아주 고약하다. 독립을 인정해줄 테니 노예를 ‘잃은’ 옛 주인들에게 배상하라는 조건을 프랑스가 내걸었기 때문이다. 친절하게도(!), 물러나는 식민자들은 배상금 낼 돈을 꿔주며 비싼 이자를 물렸다. 노예의 후손들이 빚의 족쇄에서 풀려난 건 1950년. 무려 130년 가까이 지난 뒤다. 비슷한 장면은 미국 노예해방 때도 되풀이된다. 당시 미국 사회 공론장의 현안은 노예라는 재산을 상실한 노예주에게 얼마만큼 배상해줄 것이냐였다. 비참한 노예의 삶을 살았던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이나 지원 논의는 뒤로 밀렸다. 소유권(재산권) 이데올로기의 견고한 성벽 앞에서 상식과 정의는 무력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진 자의 권리와 결정할 권리의 크기는 오래도록 거의 정비례했다. 소유권과 의결권이 늘 보폭을 함께 맞춰온 배경이다. 자유·평등·박애를 외친 혁명 이후의 프랑스 사회조차 일정 규모 이상의 재산을 가진 시민에게만 투표권을 허락하지 않았던가. 심지어 부유한 사람들은 ‘가중 투표권’의 특혜를 누린 사례도 몇몇 나라에선 발견된다. 가진 자가 가진 만큼 이상의 권리를 쥔 셈이다. ‘1인1표’가 민주주의의 보편 원리로 자리잡은 건 겨우 20세기에 들어서다.
법으로 인격이 주어진 존재(법인)인 기업은 국가나 민족 같은 정치공동체와는 구성 논리나 운영 논리 면에서 다를 수밖에 없다. 1인1표는 민주주의의 보편 원리이고 1주1표는 자본주의의 뼈대라는 생각에 오늘날 대부분 동의한다. 다만 둘 사이엔 으레 팽팽한 긴장관계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1인1표의 정신과 1주1표의 육체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찾는 일이야말로 현대 사회의 건강 비결이다. 따지고 보면 시끌벅적한 경제민주화 논의의 본뜻도 여기에 있다.
최근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공정경제 3법’을 겨냥한 재계의 반발이 아주 거세다. 야당 대표마저 개혁 법안 처리에 적극 동조할 움직임을 보이는 터라 이들이 느끼는 당혹감은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는다. 최대 쟁점은 기업활동의 헌법이라 할 상법 개정 여부다. 감사위원을 분리 선출하고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두고, 재계는 적대세력이나 투기자본의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된다고 탄식한다. 개정안이 현대 주식회사 제도의 근간인 1주1표를 허물어뜨렸다는 게 반대 주장의 핵심 논거다. 말하자면 ‘헌정 파괴’란 얘기다.
정부·여당안에 보완할 대목도 있을뿐더러, 입법 과정에서 이해당사자의 의견이 충분히 존중되고 진지한 숙의를 거쳐야 하는 건 틀림없다. 다만 1주1표를 절대진리인 양 내세워 개혁 입법 움직임에 ‘원천 반대’ 목소리만 높이는 재계 일각의 근본주의는 수긍하기 어렵다. 이사회가 총수의 뜻을 따르는 거수기 집단으로 전락하고, 결국 주주평등의 원칙이 짓밟히는 건 국내 기업에선 지금도 낯익은 풍경이다. 더군다나 정부·여당안에 대한 보완책이라며 슬그머니 차등의결권 제도 도입을 내미는 태도는 치졸하기 그지없다. ‘헌정 파괴’ 주장의 핵심 논거로 삼은 1주1표를 뒤돌아서 제 스스로 허물어뜨리는 꼴 아닌가.
2020년 가을, ‘기업 옥죄기 3법’ 딱지 붙이기에 혈안이 된 이 땅의 ‘주인’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 과거 서구 여러 나라에선 일정 한도 이상의 지분을 가진 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특정 주주가 행사하는 의결권에 상한선을 설정한 것으로, 말하자면 가진 자가 가진 만큼의 목소리도 내지 못하게 막은 제도다. 왜냐고? 극소수의 주주에게 권력이 과도하게 쏠리면 회사 경영과 관련한 토론 과정의 품질이 떨어진다는 공감대가 당대의 상식처럼 받아들여져서다. 대주주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면서 현재 방식의 1주1표가 정착된 건 19세기 후반, 저 유명한 ‘도금시대’ 때다. 평균적인 미국인들이 고된 노동의 대가로 하루에 채 2달러를 손에 쥐지 못할 때 1초에 2달러씩 재산을 불렸다는 석유재벌 존 록펠러와 같은 대부호들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 말이다. 코로나 위기가 불평등의 골을 더욱 깊게 파는 지금, 우리에게 1주1표란 과연 어떤 의미일까. 해답은 우리 모두가 찾아야 한다. 더 늦기 전에.
morg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