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카카오 계열사인 기업형 정보기술(IT) 플랫폼 기업 카카오엔터프라이즈에 1천억원을 투자했다고 6일 밝혔다. 국내 벤처기업 평균 투자액을 크게 뛰어넘는 규모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카카오가 2019년 12월에 설립한 인공지능(AI) 기반 비투비(B2B) 전문 기업이다. 업무 메신저 ‘카카오워크’와 기업용 클라우드 ‘카카오아이(I) 클라우드’ 등을 서비스한다. 산은은 1천억원을 투자해 카카오엔터프라이즈 지분 8.8%를 갖게 됐다. 87.4%는 카카오가, 3.7%는 임직원이 가지고 있다.
산은은 지난해 ‘스케일업금융실’을 신설해 제약사 지놈앤컴퍼니(200억원)와 밀키트 제조업체 프레시지(500억원) 등 14개 기업에 투자해 왔다. 1천억원 규모는 카카오엔터프라이즈가 처음이다.
여러 벤처기업에 소액으로 나눠주는 일명 ‘쪼개기 투자’ 관행이 실효성이 낮다는 비판을 받는 만큼 이런 대규모 투자 시도는 긍정적이다. 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 벤처기업 1사당 평균 벤처투자금액은 27억원에 그친다. 이 때문에 기업들이 투자를 받아도 사실상 다음 단계로 도약할 자금으로 쓰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다만 공공 성격의 정책자금이 대기업인 카카오 계열사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성장성이 커도 자금 투입이 안 돼 고사하는 기업이 많은데 민간 투자 유치 가능성이 높은 대기업 계열사에 정책금융이 지원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카카오 내부 조직 ‘에이아이랩’을 분사해 만든 자회사로, 기업형 업무 플랫폼 외에도 인공지능 스피커 개발 등 카카오의 인공지능 관련 사업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또 카카오 엔터프라이즈가 제공하는 챗봇 서비스가 카카오톡과 연동되는 등 카카오 주요 서비스와 연관성도 높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이를 토대로 설립 1년 만에 엔에이치(NH)투자증권, 교보생명, 에버랜드 등 여러 기업들과 업무협약을 맺고 빠르게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윤병섭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최근 민간 벤처캐피털조차 자금 회수가 불투명한 기업에 모험하려 하지 않는데 정책금융 기능을 가진 산은까지 이렇게 하면 초창기 벤처기업이 성장하기 어렵다”며 “수익률을 고려해 투자 대상을 선정했겠지만 민간 금융의 틈새를 메운다는 정책금융 역할을 고려하면 너무 쉬운 투자를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산은 관계자는 “국내 벤처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외국에서 받는 경우가 많아 이런 관행을 바꾸고 국내 벤처투자생태계를 활성화하기 위함”이라고 투자 배경을 설명했다.
신다은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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