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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병과 친구하는 법

등록 2021-01-14 08:59수정 2022-02-10 18:37

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노후경제학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코호트 격리된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서 한 환자가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코호트 격리된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서 한 환자가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좋은 식습관과 운동 등으로 노력한다고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확률이 줄어들고 발병 시기가 늦어질 뿐이다. 나이 들면 누구나 몇 가지 질병과는 ‘동행’하게 된다. ‘종합병동’이나 다름없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질병에는 감기처럼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놈도 있고, 지긋지긋하게 동거하는 난치병도 있다. 신체 기능의 전반적 퇴행과 맞물린 고혈압과 당뇨, 심혈관계 질환은 흔한 질병이다. 생사고락은 이런 질병이 얼마나 많고 고통스러운지, 치명적인지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몸에 나쁜 생활을 고집하면서 ‘이렇게 살다 일찍 죽고 말지’라고 말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흔히 본다. 어느 정도 살았으면 언젠가는 죽을 터이니 시기가 큰 문제는 아니다. 그 과정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두려운 것이다.

예를 들어, 암에 걸렸다고 금방 삶을 포기하는 사람은 없다. 성공 여부를 떠나 치료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려져 있다. 몸을 방치하는 건 인생의 마지막 행로를 훨씬 고통스럽게 할 우려가 크니 평소에 잘 관리하라는 것이다.

노후 질병은 뿌리를 뽑겠다고 덤벼든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왜 빨리 낫지 않나 하고 조급해하면 더 힘들어진다. 반갑지 않고 짜증 나는 친구이지만 사고를 더 치지 않도록 잘 달래 생을 마감할 때까지 관계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차선책이다.

건강검진 활용법

몸 관리의 출발점은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아는 것이다. 직장에선 건강검진이 의무화돼 있고, 퇴직 이후에도 건강보험으로 무료검진을 받을 수 있다. 별다른 증상이 없더라도 비용이 들지 않는 건강검진은 꺼릴 이유가 없다. 무료검진에는 일반 검사 항목이 모두 들어 있고, 유명 대학병원 검진센터에서 받는 P부장의 직장 건강검진과 별 차이가 없다.

5대 암처럼 10% 자기부담이 들기도 하는 검사는 이상 징후가 있을 때만 해도 된다. 특히 췌장암과 대장암같이 뚜렷한 증상이 없는 암을 초기 단계에서 발견하는 데는 정기 검진이 도움된다. 건강검진을 받은 사람의 의료비 지출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적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P부장의 직장 동료 J씨는 대장암이 3기까지 진행된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고 항암치료에 들어갔다. 평소 담배를 피우지 않고 등산도 자주 하는 등 건강한 생활을 해와 10년 넘게 건강검진을 받으면서도 대장 내시경 검사는 하지 않았다. 변에 피가 섞여 나오거나 하는 증상도 없어 암 발병을 초기에 발견하지 못했다.

건강검진에서 모호한 결과가 나오면 의사가 정밀검사를 받으라고 권고해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위험을 선제적, 적극적으로 경고하는 게 건강검진의 목적이므로 민감하게 대응할 필요는 없다. 굳이 비용이 많이 추가되는 정밀검사로 이상 유무를 확인하기보다 위험을 낮추려는 노력을 더 해야 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게 좋다.

P부장은 한때 종양표지자검사 수치가 표준구간을 조금 넘었으나 식습관에 좀더 주의를 기울여 이듬해 무사통과했다. 건강검진 결과는 ‘건강 성적표’인 셈이다. 문제가 생겼거나 생길 수 있는 신체 부위를 가늠하는 잣대다. 낙제(질환 판정)가 아니라고 해서 건강하지 못한 생활을 계속하는 면죄부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나이에 따라 병을 대하는 자세와 치료법의 선택은 많이 달라질 수 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어린이나 팔팔한 20·30대가 암에 걸렸다면 치료에 별다른 고민이 필요 없다. 항암제, 방사선, 수술이라는 3대 치료법이 암 진행 단계와 환자 건강 상태에 맞춰 적용된다. 그러나 60·70대 암환자라면 선택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

나이 들어선 문제가 생긴 어느 한 부위가 아니라 몸 전체를 바라보며 해법을 찾아야 한다. 척결하겠다고 나서면 병원균이나 암세포는 제거될지 모르나 같이 죽을 수도 있다.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잘 관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것이 나이 든 이의 존엄성을 지키고 비용도 적게 드는 ‘인간적 치료법’이다.

병원과 거리두기

나이 든 사람의 과도한 병원과 약 의존에 경종을 울리는 이가 적지 않다. 미국 최대 시니어단체 미국은퇴자협회(AARP) 회장이었던 빌 노벨리는 “병원은 더 이상 아픈 사람을 위한 곳이 아니다”라며, 나이 든 사람이 병원에 가서 병을 고치기보다는 다른 병을 얻을 확률이 더 크다고 주장했다.

또 약은 대부분 증상 완화에 치우쳐 있다. 화학물질인 약은 언제나 부작용을 동반한다. 제약회사는 약효를 ‘뻥튀기’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부작용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 예일대 공공보건학 명예교수인 로웰 레빈은 병원과 약국을 ‘필요악’이라고 말한다. 공적 건강보험으로 병원과 약국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자유는 누려야 하지만, 되도록 가까이하지 않는 게 좋다고 충고한다. 응급상황 때 병원 가기가 어렵지 않은 정도면 충분하다.

세계적으로 우수한 건강보험제도 덕에 한국인은 병원을 자주 가는 편이며, 특히 대학병원 직행을 선호한다. 큰병 치료에는 당연히 뛰어난 의료진과 기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형병원을 즐겨 찾는 것이 오히려 감염 위험에 노출되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독성이 강한 약을 복용해야 하는 질병의 치료는 한층 더 위험하다.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다른 병원균의 공격을 받으면 합병증으로 발전한다.

요양병원과 요양원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달리 돌봐줄 사람이나 방법이 없어 내린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에서 보듯이 이런 고령자 집단시설만큼 감염에 취약한 곳이 없다. 면역력이 약하고 기저질환이 없는 사람이 드무니 사망 확률도 훨씬 높다. 누굴 탓할 수가 없다. 되도록 오래 스스로를 돌볼 수 있도록 애쓰는 것밖에 없다.

나이 들어 쉽게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은 별로 없다. 예약 환자가 밀려 있는 큰 병원에선 진료받기가 더 힘들다. 검사는 많이 하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지도 않는다. 첨단 기술을 동원한 각종 검사와 처방을 계속 받는 것은 스트레스를 높이고 노후자금을 날리는 길이다.

‘명의’일수록 겸허하게 말한다. 병은 환자 스스로가 치유하는 것이며, 의사는 길잡이일 뿐이라고. 대형병원은 치료의 질은 모르지만,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데는 결코 아니다. 음식, 운동, 스트레스 조절로 꾸준히 몸을 관리하는 게 가장 안전하고 덜 아픈 방법이다. 고맙게도 나이는 질병에 따른 고통과 불편을 받아들이는 지혜와 관리·적응 능력을 길러준다. 노화가 암 진행을 늦추는 것이 대표 사례다. 나이 들면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데 더 빨리 익숙해진다.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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