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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채용비리 연루돼도 ‘신의 직장’ 은행에 4∼8년씩 근무

등록 2021-03-04 04:59수정 2021-03-04 14:03

멀어져가는 피해자 구제
지난 2018년 서울북부지방검찰청 직원들이 서울 중구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에서 채용비리 사건과 관련해 우리은행을 압수수색을 벌여 압수품을 들고 나오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2018년 서울북부지방검찰청 직원들이 서울 중구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에서 채용비리 사건과 관련해 우리은행을 압수수색을 벌여 압수품을 들고 나오는 모습. 연합뉴스.
“채용비리 연루 입사자들이 오래 일하다 보니 스스로 퇴사를 못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고요. 회사도 뒤숭숭하고 그랬죠.”

우리은행이 채용비리에 연루된 재직자 전원을 퇴직 처리한다고 밝힌 지난 2일 한 직원은 최근 우리은행 내부 분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채용비리로 입사한 이들이 짧게는 4년, 길게는 6년이나 재직하다 보니 퇴직에 저항감이 커지고 일부 동료들도 친분 때문에 이들을 두둔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처음부터 업무가 배제됐다면 달랐을 텐데 지금은 거의 조직의 일원처럼 여겨진다”고 말했다. 앞서 우리은행은 지난 2015∼2017년에 걸쳐 29명을 부정 채용했다가 지난해 2월 대법원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들 가운데 19명은 올해 초까지 근무하다 채용비리가 세상에 알려진 지 4년이 흐른 지난 2일에야 퇴직 절차를 모두 마무리했다.

우리은행 이외에 채용비리 혐의를 받은 다른 은행들에서도 관련 입사자들이 여전히 근무하고 있다. 현재 각각 2심과 1심 재판 중인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은 2013∼2016년 신규채용 과정에서 부정 청탁을 받고 합격자 점수를 조작하는 등 채용비리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기간에 입사한 이들은 짧게는 5년, 길게는 8년 이상 근무하는 셈이다. 2심 재판 중인 국민은행도 2015∼2016년 신규채용 때 채용비리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입사자들이 재직 중이다. 이들 세 은행은 정확한 재직 인원을 밝히지 않았지만 법원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채용취소를 검토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채용비리 연루 입사자의 재직 기간이 재판 기간에 따라 무한정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은행들이 채용취소 여부를 판결 확정 이후에 논의하려는 이유는 법정 다툼을 벌이는 도중에 채용 취소를 하면 혐의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여 재판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해서다. 특히 재판 중인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은 금융지주 주요 임원이 채용비리 가담 혐의자여서 법적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같은 시기 공공기관 채용비리 입사자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달랐다. 정부는 지난 2018년 공공기관 채용비리 특별점검을 벌여 재직자 197명의 채용비리 혐의를 적발해 수사 의뢰하거나 징계하기로 하고 이들을 즉시 업무에서 배제했다. 또 수사 결과에 따라 검찰에 기소되면 즉시 퇴출하기로 했다. 재판 기간이 길어질 것을 고려해 우선 검찰의 기소 요건에 해당하는 이들은 조직에서 내보내기로 한 것이다. 은행연합회도 같은 해 ‘은행권 채용절차 모범규준’을 만들어 ‘지원자가 부정한 채용청탁을 통해 합격한 사실이 확인된 경우 은행이 채용 취소 또는 면직할 수 있다’는 규정을 명문화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채용 비리가 발생한 시점에 관련 규정이 없었다거나, 입사자 스스로 채용 청탁을 몰랐을 수 있다는 이유 등을 근거로 은행들은 법원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관련자 제재를 무기한 미루고 있다.

법원 최종 판결 후에도 비리 연루 입사자를 업무 배제하지 않은 은행도 있다. 우리은행과 마찬가지로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대구은행은 비리 연루 입사자 가운데 16명이 재직 중이지만 아직 “법률 검토 중”이라고만 밝혔고 광주은행은 아예 채용을 취소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광주은행 직원들은 지난 2015∼2016 채용에서 은행이 입점한 대학 등과의 거래관계를 고려해 합격자 점수를 조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 판결을 받았다. 광주은행 직원인 아버지가 딸의 면접에 참여해 점수를 매기기도 했다.

비리 연루자의 재직 기간이 길어지면 피해자 구제도 불투명해진다. 결원이 없으니 기업이 충원할 이유가 없고 관련 피해자들이 이미 직장을 구했을 가능성도 커서다. 은행권 채용비리가 불거진 시점은 2013∼2017년으로, 4년이 지난 현재까지 구직활동을 하는 피해자들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은행들이 채용 비리 연루 입사자의 부당 해고 가능성을 들어 채용 취소가 어렵다고 하지만 최근 판례를 보면 채용비리로 입사하는 행위 자체가 입사자가 정당하게 응시했으리라는 기업의 전제를 훼손하기 때문에 채용 취소 사유가 된다”고 말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해 3월 금융감독원 채용비리 입사자의 면직 취소 요청을 받아들이면서도 “(정당히 응시했다는) 착오가 없었더라면 피고(금감원)가 원고(입사자)를 채용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원고와의 근로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김 대표는 “최소한 1심 이상의 법원 판결을 받은 은행이라면 이런 판례를 근거로 채용 취소가 가능한지 살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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