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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복지 후진국, 미국 예외주의’의 종언인가?

등록 2021-03-11 07:59수정 2022-02-10 18:40

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이창곤의 웰페어노믹스
미국 바이든 정부의 획기적 아동양육보조금 추진 배경 분석
미국은 서구 선진국 가운데 특이한 나라다. 봉건제의 계급 질서와 군주제 경험이 없다. 주목할 만한 사회주의 운동도 없었다. 자유주의와 개인주의가 강하며, 능력주의와 기회균등을 중시한다. 그러면서도 인종차별과 갈등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나라다. 학자들은 일찍이 이런 미국 사회의 특이성을 ‘미국 예외주의’란 개념으로 포착했다.

미국 예외주의는 여러 형태를 띤다. 복지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세계에서 부자가 가장 많은 나라인데도 불평등이 극심하며, 빈곤율이 아주 높다. 놀랍게도 아동 빈곤율은 21.2%(2018년 기준)에 이른다. 열에 둘 이상 아동(18살 미만)이 중위소득 50% 이하의 빈곤 가정에서 산다는 얘기다. 이는 한국(12.3%)과 프랑스(11.7%)에 견주어 두 배에 가까운 수치다. 폴란드와 비교하면 세 배(7.4%)나 높다.

이런데도 보편적 아동수당이 없다. 연금이나 실업급여 수준도 낮은데다 각종 가족정책 또한 부실하다. 결정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전 국민을 위한 공적 의료보장제도가 없어 인구의 30%가 의료보장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최고의 선진국 그림자는 이렇게 깊고 짙다.

일부 학자는 조세를 통한 세금공제나 높은 교육 지출과 사적 복지를 고려해 미국을 ‘은폐된 복지국가’라며 반론을 펼치지만, 미국은 자유주의 복지국가의 전형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복지는 극빈층 지원을 뜻하며, 중산층 이상은 시장을 통해 삶의 안전을 구매한다. 세계경제의 4분의 1을 점유하는 국내총생산(GDP) 부동의 1위를 자랑하지만, 공적 사회복지 지출은 세계 20위 수준(2019년 기준, 18.7%)이다. OECD 평균인 20%에도 못 미쳐 ‘지체된 복지국가’ 또는 ‘복지 후진국’으로 불리는 근거다. 한국은 12.2%로 최하위권인 35위다.

백악관과 공화당의 아동양육보조금 방안

이런 미국 예외주의에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올 복지 확대 정책이 추진돼 눈길을 끈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에서는 ‘미국 예외주의의 종언’이란 다소 성급한 제목으로 이런 움직임을 보도했다. 영국 <비비시(BBC)>나 미국 <뉴욕타임스>,<시엔엔(CNN)>,<시엔비시(CNBC)> 등도 잇따라 관련 기사를 내놓으며 이를 조명했다.

언론이 주목한 움직임은 두 개의 아동빈곤 감소 정책안이다.

하나는 민주당의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내놓은 새로운 아동급여 프로그램(enhanced Child Tax Credit)이다. 6살 이하 아동에게 1인당 최대 연간 3600달러, 즉 월 300달러를 지급하고, 18살 미만 아동(7~17살)에게는 연 3000달러를 지급하자는 아동양육보조금 방안이다. 민주당과 바이든 정부는 이런 아동복지 프로그램을 한시적으로 올 한해만 집행할지 아니면 지속적으로 이끌어 나갈지는 아직까지는(2월 20일 현재) 논의중이다..

다른 하나는 뜻밖에도 공화당의 밋 롬니 상원의원이 제안했다. 그는 6살 이하 아동에게는 최대 4200달러를, 18살 미만에게는 연 3000달러를 지급하자는 안을 제시했다. 지급액만 놓고 보면 롬니의 안은 백악관보다 많다. 다만 롬니 의원 안은 새 아동양육보조금 방안을 도입하는 대신 기존 몇몇 보조금을 없애는 내용이다.

미국은 현재 빈곤 아동 대책으로 연 2000달러까지 지급하는 ‘자녀양육세금공제제도(Chid Tax Credit)’를 운용한다. 이는 세금환급 형태로 이뤄지는데, 문제는 자녀양육을 위해 지출하는 비용에 비하면 지급 액수가 너무나 작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동안 지급액을 높이고 더 많은 빈곤 아동이 두루 혜택을 받도록 아동양육보금제도 개편 등 아동복지를 대폭 확대해야한다는 제언이 끊임없이 있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바이든 행정부의 안은 미국 아동 빈곤율을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기실 미국 정부나 롬니 의원이 이렇듯 빈곤 아동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데는 충분한 배경이 있다.

미국이 안고 있는 최대 현안이 바로 아동빈곤과 보육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들 문제로 파생되는 여성 노동인구와 급격한 출산율 감소 현상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에 코로나 19로 많은 탁아시설이 문을 닫아 이들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세계 최고의 부자 나라 미국은 놀랍게도 아동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세 번째로 높다. 미국 시애틀의 천막촌에 사는 한 여성이 두 살 난 아이를 안고 있다. REUTERS
세계 최고의 부자 나라 미국은 놀랍게도 아동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세 번째로 높다. 미국 시애틀의 천막촌에 사는 한 여성이 두 살 난 아이를 안고 있다. REUTERS

싱크탱크 <미국진보센터>가 내놓은 2019년 아동돌봄 관련 보고서를 보면, 대부분의 미국 중상층 이하 가정은 비싼 보육료 등으로 양육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5살 미만 자녀를 둔 맞벌이 가정 가운데 보육료 지출은 각 가정 평균 소득의 1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적 아동양육서비스와 공공어린이집 등 관련 인프라가 빈약한 데 따른 것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 기준으로 4살 미만의 아기 돌봄을 위한 탁아서비스가 한 달에 평균 1412달러(3월 11일 기준 161만원 가량)에 달하며 4살 아이 돌봄을 위한 탁아서비스는 한 달에 평균 956달러 정도가 된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도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적지 않게 들어간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플러턴)의 권명중 교수(행정/정책학)는 “맞벌이 부부라도 한 달 봉급 받아서 아동양육비, 높은 세금, 집세, 그리고 학자금 융자 갚고 나면 모자랄 때가 종종 있다”면서 “싱글맘이나 싱글대디 또는 저임금 노동자들은 더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런 현실이기에 권 교수는 미국의 아동복지 확대 움직임을 두고서 “만약 좀 더 충분한 육아 보조금이 없다면 육아를 책임지는 여성 노동인구가 줄어들 수밖에 없거나 육아에 대한 어려움으로 아이를 낳지 않는 저출산 상황이 더 악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미국의 합계출산율은 2000년 2.01에서 2020년 1.77로 뚝 떨어졌다.

보육, 포용적 성장 전략의 핵심

이런 맥락에서 라사드 말리크 <미국진보센터>의 정책분석가(육아정책)는 “미국의 일하는 가정의 보육료 부담이 막대하다”며 따라서 “보육 문제 해결은 미국 경제의 포용적 성장 전략을 추구하는 정책 입안자들에게 핵심 목표가 돼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미국의 전체 사회보장 재원 규모 및 하위 재원 구성 자료: OECD,사회보장위원회
미국의 전체 사회보장 재원 규모 및 하위 재원 구성 자료: OECD,사회보장위원회

그렇다면 이번처럼 획기적인 아동양육보조금의 대폭 확대 등 미국의 움직임은 ‘지체된 복지국가’란 미국 예외주의에 얼마나 근본적이고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올까?

기대 어린 성급한 전망을 하기도 하지만, 권 교수의 답은 “예 그리고 아니오”(Yes and No)다. 이번 조처는 획기적이긴 하나 근본적인 복지체계 변화라고 말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는 풀이다. 대상을 대폭 확대하고 금액도 높아진 획기적인 방안이긴 하나, 선진 복지국가에서 도입돼 있는 자산조사없는 보편적 아동수당(Chid Allowance)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더 주시해야할 대목은 실은 이런 새로운 정책들의 실제적인 집행에서의 한계가 무언가라는 점과, 더불어 한시적인 정책형태성을 벗어날 수 있는지 여부다. 즉 아동 빈곤율을 낮추고 가정의 보육 부담을 줄일 공적 육아서비스와 인프라의 획기적인 진전 그리고 정치권과 행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이 뒷받침없이 한시적인 아동급여 확대만으로는 ‘미국 예외주의의 혁명적 변화’를 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논지다.

goni@hani.co.kr

<참고자료>

조 바이든 민주당 당시 대통령 후보 시절 복지공약: https://www.cnbc.com/2020/08/18/heres-how-joe-biden-plans-to-change-social-security-if-elected-president.html

미국 민주당의 아동수당 법안 https://edition.cnn.com/2021/02/07/politics/child-tax-credit-democrats-biden/index.html

롬니 의원의 안: https://www.cnbc.com/2021/02/04/romney-unveils-plan-to-send-families-up-to-4200-per-year-per-child.html

미국진보센터의 관련 보고서 https://www.americanprogress.org/issues/early-childhood/reports/2019/06/20/471141/working-families-spending-big-money-child-care/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신호 및 ,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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