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일본 영화 <라쇼몽>은 팩트(사실) 하나를 놓고 서로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을 교차해 보여준다. 산적이 사무라이(일본 무사)를 죽이고 그 아내를 겁탈한 게 팩트였다. 하지만 사람마다 얘기가 달랐다. 붙잡힌 산적은 사무라이와 일대일로 싸워 죽였다고 했다. 아내는 남편이 경멸스러운 시선으로 쳐다봐서 죽였다고 했다. 무당에게 빙의(영혼이 옮겨 붙음)한 사무라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진실은 무엇일까? 세 사람은 같은 경험을 했지만 모두 다르게 그것을 인식하고 해석한다. 이렇게 한 사건을 놓고 서로 다른 해석을 하는 걸 ‘라쇼몽 효과’라고 한다. 철학, 심리학, 해석학에선 ‘인식의 주관성’이라고도 한다.
‘게임스톱 논란’에서도 라쇼몽 효과가 보였다. 게임스톱은 게임기와 게임소프트웨어를 빌려주는 오프라인 체인점이다. 우리나라에서 한때 유행한 비디오가게 같은 곳이다.
게임스톱이 오프라인 가게를 온라인 유통점으로 바꿔 수익성을 개선하려 시도하면서 ‘로빈후드’로 불리는 미국 개미(개인투자자)들이 게임스톱 주식을 사들였다. 이에 헤지펀드(단기간에 고수익을 추구하는 민간 투자 신탁)도 나섰다. 개미들이 망해가는 기업에 거품을 일으킨다며 주식 유통량의 144%를 공매도(주식을 빌려 판 뒤 주가가 내려가면 싼값에 갚아 차익을 얻는 투자법)로 확보했다.
개미들은 ‘월스트리트베츠’(WallStreetBets·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의 토론방)에서 “헤지펀드와 공매도 세력에 본때를 보여주자”며 게임스톱 주식 사들이기 운동을 벌였다. 18달러였던 주가는 483달러까지 치솟았지만 50달러대로 곤두박질했다.
이런 현상을 ‘민란’으로 보는 해석이 있다. 일부 세력이 개미를 선전·선동해 시장가치를 훼손했다는 시각이다. 실적이 부진하고 사업 전망도 좋지 않은 회사 주가가 300달러에 이르는 건, 인간의 탐욕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추격매수를 한 많은 개미만 고점에 물려 피해를 봤다.
‘혁명’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개미들이 주식시장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는 헤지펀드에 저항했다는 얘기다. 독점적 정보를 갖고 개미 털기로 수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헤지펀드를 향한 분노, 발행 주식 수보다 더 많은 공매도 물량에 대한 문제제기였다는 것이다. 즉, 기회의 공정성을 향한 개미의 외침이라는 시선이다.
또 다른 해석은, 힘없이 사라져가는 것을 향한 아쉬움일 듯싶다. ‘로빈후드들’은 게임스톱뿐만 아니라 여러 종목을 사들였다. 2020년 부도 위기까지 몰렸던 극장 체인 AMC엔터테인먼트, 휴대전화 회사였다가 소프트웨어 회사로 변신한 블랙베리, 생활용품 업체 베드배스앤드비욘드 등이다. 아마존 같은 힘센 온라인 기업만이 살아남는 시대에, 마치 개미 그 자신처럼 오프라인에서 힘없이 뒤처진 기업이 많았다.
피 터지는 경쟁 시대에 살고 있는 개미들이 경쟁할 필요가 없었던 어린 시절에 친구나 부모와 함께 게임스톱, JC페니 같은 오프라인 가게를 찾았던 행복한 추억을 소환하려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온 노래 <걱정 말아요 그대>를 다시 듣고 싶어진다.
정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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