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서울과 영상으로 연결해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개혁방안으로 대대적인 기능 분리보다는 불필요한 역할을 축소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당초 ‘해체 수준’으로 개혁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공공 주도의 주택공급 대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엘에이치의 핵심 기능인 토지개발과 주택공급을 분리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23일 기획재정부의 설명을 들어보면 정부는 이달 말께 엘에이치의 윤리경영을 강화하고 공사의 역할을 재설계하는 혁신 방안을 발표하는 것을 목표로 대책을 마련 중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토지개발 기능과 주택공급 역할을 쪼개면 (공공 주도의) 공급에 차질이 생길 우려가 있다”며 “엘에이치가 비대하게 팽창하는 과정에서 안 해도 될 일을 많이 벌인 사업을 축소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기재부는 엘에이치가 자산 185조원, 인력 1만여명의 비대한 조직이 되면서 서로 다른 부서에서 하는 일을 모를 정도로 내부 통제가 이뤄지지 않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 관계자는 “엘에이치를 재설계해서 투명하면서 통제 가능한 조직으로 만드는 한편, 공급 대책도 잘 진행하도록 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엘에이치 직원들의 땅 투기 파문 이후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11일 엘에이치에 대해 “해체 수준의 혁신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정치권이나 학계에서는 엘에이치를 과거 토지공사나 주택공사처럼 분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정부가 공공 주도의 도시개발·주택공급 역할은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2·4 공급 대책을 진행하려면 엘에이치의 역할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면서 조직 해체는 하지 않는 것으로 방향을 정한 것이다. 정세균 총리는 지난 1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는 “엘에이치의 택지개발과 주택을 짓는 기능을 허무는 것은 검토하지 않는다”면서 “필요하면 엘에이치의 다른 기능을 분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엘에이치의 주거복지 기능을 떼어 정부 조직인 가칭 ‘주택청’을 신설하는 방안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기재부는 공공기관의 업무를 정부조직으로 바꾸는 건 중장기적으로 검토할 사안으로 당장 엘에이치 혁신 방안에 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엘에이치 조직을 대폭 축소하는 방식은 사실상 어렵게 되면서 정부는 엘에이치 직원들의 투기 차단을 위한 윤리규정 강화에 더욱 힘 쏟을 방침이다. 정세균 총리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공직사회에 대한 감시체계를 강화하고 엘에이치가 국민 신뢰를 회복하고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도록 강도 높은 개혁을 단행하겠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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