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해외증권 매매로 지난해 순이익의 90%에 육박하는 6조5250억원을 벌어들여 재정에 쪼들리는 정부 계좌에 5조1220억원을 쐈다.
31일 한국은행이 공개한 ‘2020년도 연차보고서’를 보면, 한은의 작년 순이익은 7조3659억원으로 전년(5조3131억원)보다 38.6%(2조528억원) 증가했다. 한은 설립 이래 최대 규모다. 한은은 시중유동성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통화안정증권을 발행해 유동성을 흡수함과 동시에 외화자산을 사들인다. 이에 따라 자산의 대부분은 외화증권과 예치금 등으로 구성되고 부채의 대부분은 화폐, 통화안정증권과 예금이 차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은의 손익은 외화자산 운용수익률과 통화안정증권 발행금리의 차이, 환율 변동에 좌우된다. 결산 결과를 항목별로 보면 유가증권 매매로 얻은 이익이 9조8978억원, 유가증권 매매 손실은 3조3728억원으로 나타났다. 한은이 지난해 해외채권과 주식 등에 투자해 얻은 순손익이 6조5250억원에 달한 것이다. 전년보다 3조1407억원을 더 벌어들였다. 통화안정증권 이자로 나간 돈은 8921억원 감소했다.
이같은 순이익 급증은 한은의 매매 실력보다는 완화적 금융환경에 힘입었다. 한은은 “지난해 국제금리 하락과 해외주가 상승 등으로 외화유가증권 매매차익이 증가한 반면에 기준금리 인하로 통화안정증권 이자는 감소했다”고 순이익 증가의 배경을 설명했다.
외화자산 운용내역을 보면 2020년 말 현재 현금성자산이 5.1%, 직접투자자산이 73.9%, 위탁자산이 21.0%를 차지했다. 상품별로는 정부채 44.5%, 정부기관채 14.4%, 회사채 13.6%, 자산유동화채 11.5%, 주식 8.9% 차례로 구성됐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회사채와 주식 비중을 각각 0.2%포인트 확대했다. 통화별 비중은 미 달러화가 67.7%로 지난해보다 1.4%포인트 줄었다. 한은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완화적 통화정책과 하반기 이후 안전자산 선호 약화 등으로 미 달러화가 약세를 보임에 따라 비중을 축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은은 지난해 당기순이익의 30%인 2조2098억원은 법정적립금으로, 341억원은 농어가목돈마련저축장려기금 출연 목적의 임의적립금으로 쌓아뒀다. 나머지 5조1220억원은 정부에 세입으로 납부했다. 정부·여당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법정적립금 잔액은 17조152억원으로 급증했다.
지난해말 한은의 총자산 규모는 538조7304억원으로 2019년말보다 9.4%(46조1556억원) 증가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정책대응으로 국고채 매입이 늘고 금융중개지원대출 한도 증액과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기구에 대한 대출이 증가한 영향이다.
부채는 516조5591억원으로 9%(42조5089억원) 늘었다. 화폐발행이 늘어난데다 유동성 조절을 위한 통화안정계정과 환매조건부 매각증권(RP) 규모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지난해말 화폐발행 잔액은 147조5569억원으로 1년 새 21조 8580억원이 늘었다. 통화안정증권 잔액은 159조2570억원으로 4조8053억원 감소했다.
자본 규모는 미처분이익잉여금과 적립금 증가로 19.7%(3조6467억원) 늘어난 22조1713억원이다. 한광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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