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기업과 가계가 금융기관 등에서 빌린 돈이 사상 최대로 증가한 가운데, 가계가 주식에 투자한 자금 규모도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기업이 현금·예금으로 쌓아둔 금액은 처음 100조원을 넘어섰다.
한국은행이 8일 발표한 ‘2020년 자금순환 잠정치’를 보면, 가계(비영리단체 포함)의 여윳돈으로 볼 수 있는 순자금운용(운용-조달) 규모가 통계가 작성된 2009년 이래 최대인 192조1천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100조원이나 불어났다. 재난지원금 등으로 소득은 늘었지만 코로나19로 소비가 줄어든 영향이다. 여기에 대출 등으로 끌어모은 173조5천억원을 합쳐 가계는 모두 365조6천억원의 자금을 굴렸다. 이 가운데 사상 최대 규모인 83조3천억원을 주식(국내주식 63조2천억원, 해외주식 20조1천억원)에 쏟아부었다. 늘어난 가계 빚은 대개 생계자금과 주택관련 자금으로 쓰이지만 지난해의 경우는 상당부분이 주식투자로 흘러갔다는 관측을 뒷받침하는 셈이다. 이에 따라 가계의 금융자산에서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년보다 4.1%포인트 급등한 19.4%로 역대 최대로 높아졌다. 여기에 펀드를 더한 비중은 21.8%로 3.7%포인트 높아졌다.
가계 예금에서는 자금의 단기 부동화가 뚜렷했다. 지난해 장기저축예금에서는 29조원이 빠져나갔다. 장기예금이 감소한 건 통계작성 이후 처음이다. 반면 1년 이하인 단기저축예금은 117조원 불어났다. 언제든 빼쓸 수 있는 결제성 예금 증가액은 42조4천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기업(비금융법인)은 반대로 자금조달을 급격히 늘려 순자금조달(조달-운용) 규모가 88조3천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차입과 증권발행을 통해 269조원의 자금을 끌어왔다. 전체 운용자금(180조7천억원) 중 현금·예금 형태로 비축한 금액이 128조원으로 전년(44조원)에서 2배 가까이 급증했다. 기업예금도 장기에서 단기로 이동했다. 단기저축성예금은 6조9천억원에서 95조3천억원으로 급증했다. 장기예금은 15조4천억원 감소했다.
정부 부문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국채발행이 늘면서 처음으로 순자금조달(27조1천억원) 처지가 됐다. 소득보전용 이전지출이 급증한데다 경기부양을 위해 정부 소비와 투자를 확대했기 때문이다.
국외부문을 포함한 총금융자산은 처음으로 2경원을 돌파했다. 지난해말 총금융자산 잔액은 2경764조9천억원으로 1년 전보다 11.6%(2163조8천억원) 증가했다. 구성내역을 보면 주식·펀드의 비중이 22.4%로 2%포인트 상승한 반면, 채권 비중은 15.4%로 0.7%포인트 낮아졌다. 주가가 오른 덕분에 가계의 금융부채 대비 금융자산 배율은 2.21배로 전년 말(2.12배)보다 높아졌다. 순금융자산(자산-부채)은 2488조4천억원으로 1년 전보다 386조원 증가했다.
한광덕 선임기자
k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