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컨테이너 1호선 2만4,000TEU급 ‘HMM알헤시라스호’의 만선 출항을 시작으로 동급 선박 12척 모두 만선을 기록하는 등 32항차 연속 만선이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HMM 제공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짙게 드리웠던 먹구름이 서서히 가시면서 국내 주요 기업들의 실적도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특히 비대면 수요 증가에 따른 수혜에서 벗어나 있던 굴뚝 산업의 선전이 눈길을 끈다.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올라타기 위한 투자를 늘리고 인수합병에 나서는 등 사세 확장에 힘 쏟는 기업도 여럿이다. 다만 이런 온기가 국내 기업 생태계의 상층부를 차지하는 주요 대기업을 넘어 아랫단까지 폭넓게 확산될지는 미지수다. 수출부문과 내수부문의 온도차도 여전하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철강·조선·화학 등 전통 굴뚝 산업에 속한 기업들이 부쩍 힘을 내고 있는 점. 글로벌 경기가 회복세를 타면서 상품의 원재료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대규모 인프라 투자에 나선 것도 굴뚝 산업의 앞날을 밝게 하는 요소다.
연초이긴 하지만 역대급 실적을 발표하는 기업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세계 1위 철강회사인 포스코는 올 1분기(1~3월)에 1조5520억원(잠정)의 영업이익을 거둬들였다. 한 해 전에 비해 2.2배나 늘어난 것으로, 2011년 2분기 이후 분기 기준 가장 많이 남겼다. 현대제철도 흑자 전환을 넘어 영업이익이 시장 컨센서스(약 1800억원)를 크게 웃도는 3천억원을 넘어섰다. 전방 산업인 자동차 업황 개선에 따른 수혜를 톡톡히 누리는 모양새다.
보다 극적인 변화는 조선업에서 나타나고 있다. 조선업은 3~4년 동안 심각한 업황 부진을 겪으면서 업종 전체가 정부 차원의 ‘구조조정’ 대상으로 꼽혔다. 하지만 경기 회복세에 따라 해운 물동량이 급증하면서 잇달아 잭팟(대규모 수주 계약)을 터뜨리고 있다. 한국 조선업의 전성기로 꼽히는 2007년을 떠올리는 흥분도 감돈다. 실제 조선·해운 시황 분석업체인 클락크슨리서치는 올 1분기 컨테이너선 신규 발주량(593만8898CGT)이 지난해 4분기의 두 배, 지난해 1분기에 비해선 10배 수준이라고 밝혔다. 올 1~3월 국내 조선 3사(한국조선해양·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은 1만2천TEU급을 포함해 컨테이너선 62척을 쓸어담았다. 임시 운항 편성과 만선 행진을 이어가는 HMM 등 해운업계가 빠른 회복세를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엘지(LG)화학이나 포스코케미칼도 분위기가 좋다. 이달말 실적 발표가 예정된 엘지화학은 1조원 내외의 영업이익을 거둔 것으로 시장은 본다. 포스코케미칼은 지난 1~3월 동안 올린 영업이익은 한 해 전에 견줘 두배 남짓 늘었다.
경기 회복과 자동차 등 전방 산업 업황 개선에 따라 포스코의 경영실적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코로나19 수혜 업종으로 꼽혀온 반도체 부문은 올해에도 고성장을 이어갈 기세다. 인공지능·자율주행 등 산업 패러다임 변화의 불쏘시개가 반도체이기 때문이다. 패러다임 변화와 코로나 수혜가 버무려지는 덕택에 ‘슈퍼 사이클’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우선 메모리 반도체 가격 전망이 꾸준히 우상향 중이다.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로선 매출과 영업이익이 더 늘어날 여지가 큰 셈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지난 21일 펴낸 보고서에서 올해 2분기 디(D)램 고정거래가격 전망값을 기존보다 5%포인트 올렸다. 애초 전망은 지난해 4분기 대비 가격 상승폭을 13~18%로 본 바 있다. 서버용 디램 가격도 최대 20% 상승에서 25% 상승으로 상승폭을 올려잡았다. 이에 증권가에선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의 연간 영업이익이 코로나19 이전은 물론 반도체 시황이 정점에 이르던 2018년 수준에 근접할 것으로 본다.
국내 양대 플랫폼 회사인 네이버와 카카오는 성장 잠재력 확충에 부쩍 공을 들이고 있다. 수백명에 이르는 개발자 상시 모집과 보상 수준의 상향 조정은 ‘사람이 무기’인 정보기술(IT) 회사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웹툰 등 콘텐츠 관련 업체나 전자 상거래 쪽에 지분 매입 등 투자 확대도 활발하다.
지난해 코로나19로 극심한 불황을 겪었던 백화점 등 오프라인 매장도 올해 들어 개선 흐름을 보이고 있다. 내수 흐름을 보여주는 카드승인액도 점차 증가세다. 자료 : 기획재정부
굴뚝 산업이나 전통 제조업의 빠른 회복세와 달리 내수를 중심으로 한 서비스업은 여전히 불확실성 속에 놓여 있다. 저비용항공사를 포함한 국내 항공사들이 줄줄이 1분기에 영업손실을 이어간 게 그 예다. 대한항공이 손실 폭을 줄인 것은 여객 수요 회복 지연을 상쇄해준 화물 운송 부문이 상대적 개선 움직임을 이어간 덕택이다. 국외 사정과 달리 백신의 느린 도입으로 코로나19 리스크가 연중 이어질 전망이어서 국내 여객 수요에 기반한 항공업계나 여행업계의 부진은 이어질 우려가 있다. 지난 3월부터 빠른 판매 회복세를 보이는 백화점과 대형마트도 사회적 거리두기 재강화 등 돌발 변수에 따라 회복세가 주춤하며 관련 기업의 영업실적을 끌어내릴 수 있다. 한층 격화하고 있는 미-중을 중심으로 한 무역 갈등은 파란등이 켜진 주력 산업분야의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주요 산업 전문가들이 코로나19와 함께 꼽는 대표적 경기 불확실성 요소다.
전반적 회복세에도 온도차는 여실하다. 제조업과 서비스업 간, 제조업이라고 하더라도 수출 부문과 내수 부문이 다르다. 한국은행이 매월 발표하는 ‘기업경기실사지수’(업황 전망 BSI)는 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지난해 5월께 바닥을 찍고 오르고는 있으나 상승폭은 업종과 부문별로 격차가 크다. 지난달 4월 조사와 지난해 5월 조사 결과를 비교하면 제조업(상승폭 47포인트)과 서비스업(30포인트) 간 상승폭 격차는 17포인트, 수출 부문(60포인트)과 내수부문(40포인트)는 20포인트나 차이가 있다.
김경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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