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경제적 불평등 완화를 위해 상병수당 도입과 부양의무자 폐지 등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지만 기존 공약에서 후퇴하거나 별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 대통령은 이들 제도 도입이 완전한 경제 회복의 종착점이라고도 했다.
17일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상병수당 도입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 4월 ‘상병수당 제도기획자문위원회’가 처음 열렸다. 같은 달 보건사회연구원은 복지부로부터 상병수당 연구를 위한 연구 용역을 맡았다. 상병수당 제도는 노동자가 아프면 일정 부분 소득을 보장받으면서 쉴 수 있도록 하는 사회보장제도다. 지난해 7월 정부는 한국판뉴딜을 발표하면서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해 2021년 용역, 2022년 시범 실시 등 제도 도입 계획을 밝혔다. 1년이 안 돼 문 대통령은 제도 도입을 서두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재부는 미온적인 입장이다. 이억원 기재부 1차관은 최근 “지난해 밝힌 대로 올해는 연구 용역을, 내년에는 시범사업을 할 계획이다. 최종 방안은 이런 과정을 거쳐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통해서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재부 관계자 역시 “내년 시범 실시 외에는 현재로써는 예정된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 임기 안에는 상병수당 도입은 물 건너 간 셈이다.
부양의무자 폐지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로 ‘부양의무자 폐지’를 약속했다. 주거급여는 2018년부터, 생계급여는 2022년까지 부양의무자 기준이 사라져 사각지대가 해소될 전망이다. 하지만, 의료급여에 대한 기준 폐지는 요원하다. ‘아파도 돈 없어 손쉬운 병도 치료받기 힘든’ 상황이 계속될 수 있는 셈이다. 문 대통령의 속도를 내겠다는 발언에도 기재부는 적극적이지 않다. 기재부 관계자는 “의료급여 1급은 자기 부담이 하나도 없어, 과하게 쓸 경우 ‘의료쇼핑’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완전 폐지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빈곤 가구가 의료급여를 활용해 의료쇼핑을 할 것이란 우려부터 하는 것이 바로 빈곤층 삶에 대한 정부의 몰이해”라며 “기재부는 그나마 사정이 나아 건강보험료를 체납하지 않는 빈곤층마저도 본인부담금때문에 치료를 못 받고 파스로 버티다 중병이 드는 현실은 손쉽게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잉의료는 수요자가 아니라 (의사 등) 공급자 측면의 주도로 벌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라고 덧붙였따.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에 최근 보건의료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성명을 내어 “질병 치료와 치료 중 생계보장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라며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건강보험 보장성은 거의 답보상태이고, 상병수당 추진도 말뿐이지 지지부진하다”고 비판했다.
여기에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을 위한 손실보상과 백신 휴가도 기재부는 소극적이다. 문 대통령은 손실보상에 대해 “코로나로 큰 타격을 받은 업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의 어려움을 덜어드리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재부는 ‘손실보상’이 아닌 ‘피해지원’에 초점을 맞추는 동시에 소급 적용은 어렵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또 코로나19 백신 접종 장려를 위해서 필요한 백신휴가 역시 ‘재정’을 이유로 반대하는 형편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백신 접종 전체 인원을 대상으로 휴가를 줄 경우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며 “공직자는 연차 휴가를, 민간은 자율적으로 휴가를 줄 것을 권고하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고 밝혔다. 기재부는 백신 접종자 4400만명이 휴가를 받을 경우 연간 최대 6조2천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했다.
이정훈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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