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열어젖힌 재정 확장 시대를 맞아 재정 투입의 필요성, 재정 여력 여부에 집중했던 논쟁의 쟁점이 서서히 재정 확장 영향을 살펴보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얼마나 쓸 것인가’에서 ‘어떻게 쓸 것인가’로 전 세계의 고민이 이동 중이다.
최근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규모 재정 정책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겉으로는 규모를 둘러싼 논쟁 같지만, 핵심은 질 좋은 지출에 대한 것이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재정의 역할이 부각될 우리나라도 단순히 정부가 돈을 써야 한다는 데 그치지 않고, 재정의 선순환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논의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지난달 미국의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4.2% 급등하자 일각에서는 정부의 대규모 재정 정책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걱정하고 나섰다. 코로나19는 경제가 멈추는 초유의 보건 위기로 정부의 재정 정책 중요성이 부상했다. 지난해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19%에 달하는 약 4조 달러(약 4518조원)의 지원책을 시행했다.
올해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는 훨씬 적극적이다. 지난 3월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1조9천억 달러 규모의 미국구조계획이 의회를 통과했다. 또 2조3천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공공투자인 미국일자리계획과 1조8천억 달러 규모의 인적 투자인 미국가족계획도 추진할 계획이다. 총 6조 달러(약 6777조원) 규모의 초대형 재정정책을 실행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거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짚어봐야 한다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점검을 요구한 주인공은 의외로 그동안 과감한 재정정책을 요구해온 이들이다.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전 재무장관)는 지난 2월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정부 지출 규모가 필요한 수준을 훨씬 넘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올리비에 블랑샤르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 또한 에스엔에스(SNS)에 “바이든 행정부 부양책이 강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이라고 합세했다.
두 사람의 지적은 얼핏 보면 지출 규모에 대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단순히 돈을 많이 쓴다고 비판한 것이 아니다. 인플레이션은 한 나라의 공급 능력 대비 수요가 너무 강할 때 나타난다. 현금 지원 등의 재정정책은 가계에 흘러들어 가 수요를 자극한다. 그런데 코로나19는 공급 차질 문제를 불러오고 있다. 낮아진 공급 능력 대비 필요 이상으로 큰 규모의 수요 자극은 인플레이션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두 사람 주장의 뼈대다. 인플레이션이 오면 재정 정책과 한 방향으로 움직이던 완화적 통화정책도 불가피한 금리 인상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의 요구는 지출 규모를 줄이라는 것보다 지출의 성격을 확인하라는 얘기로 볼 수 있다. 1조9천억 달러 미국구조계획은 실업수당, 제3차 재난지원금 등 수요를 촉진하는 지출이 많은데, 이것보다 공급 능력인 잠재성장률을 끌어 올릴 수 있는 지출을 하라는 뜻이다. 서머스 교수가 <워싱턴포스트> 기고문 마지막에 “미래 인플레이션과 금융 안정을 위협하지 않고 공공투자를 통해 더 나은 재건을 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최근 바이든 정부의 2조3천억 달러 인프라 공공투자 계획에 대해서는 “기대된다”고 좋은 평가를 한 이유다.
블랑샤르 전 수석이코노미스트도 인플레이션 우려에 대해 “코로나19로 경제의 단기 공급 능력이 훼손된 상태여서 대규모 소득 보전은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 말은 거시 경제 균형 차원에서 수요 자극이 아닌 다른 재정 지출을 고민하라는 당부로 해석할 수 있다.
최서영 삼성선물 연구원은 지난 2월 보고서에서 “미국 학계의 인플레이션 논쟁은 효율적인 정부 지출을 압박하는 것이 목적일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 재정정책.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제공
우리나라도 코로나19 경기 회복, 불평등 극복 등을 위해 재정의 역할이 커졌다. 국제통화기금의 지난달 ‘재정점검보고서’(Fiscal Monitor)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일반정부(D2) 국가채무비율은 올해 53.2%에서 2026년 69.7%로 올라간다.
그러나 현재의 재정정책 논의는 ‘얼마나 쓸 것인가’에만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지출 총량을 늘려야 한다는 이야기는 많지만, 이것이 거시 경제에 미치는 영향, 지출의 질에 대한 이야기는 부족한 상황이다. 주요 대선 주자들도 돈을 더 많이 쓰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
재정 지표는 고정된 수치가 아니다. 국가채무비율의 경우 경제가 성장해 지디피가 증가하면 채무비율이 자연스레 떨어진다. 선순환을 가져오는 효율적 지출을 골라내는 논의가 필요하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확장적 재정정책이 본격화되면서 균형 발전 명목으로 예비타당성 면제 등 지역 이권으로 추진된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해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실시간 소득 파악 시스템이 구축되면 나타날 사각지대에 대한 복지 지출과 사회서비스 공공 인프라에 대한 투자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우리나라는 공공 인프라의 경우 청년 주거 서비스에 대한 정부의 재정 역할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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