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최고금리가 오는 7일부터 연 24%에서 20%로 인하되는 가운데 6일 오후 서울 중구 중앙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 대출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10월 출시하려는 비대면 대출이동(대환대출) 서비스가 반쪽 출범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토스, 카카오페이 같은 핀테크 앱에서 비대면 대출이동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도록 추진하는 것에 시중은행들이 반발하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빅테크(대형 기술기업) 기업의 우월적 지위가 강화될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속으로는 금리인하 경쟁을 피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 비대면 대출이동 무엇?
금융위원회는 오는 10월 서비스 시작을 목표로 비대면 대출이동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현재는 대출을 갈아타려면 고객이 기존 은행을 방문해 확인서류를 발급받은 뒤 신규 대출을 받으려는 은행에 대환대출을 신청해야 한다. 신규 은행은 고객이 기존에 대출받았던 은행에 대출금을 상환해주고 계약 해지를 하는데,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법무사 수수료 등 각종 비용과 시간이 든다.
정부는 소비자가 직접 은행에 가지 않아도 이런 대환대출 절차를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금융결제원의 계좌통합관리 앱 ‘어카운트인포’에 대출이동 메뉴가 추가되고, 소비자와 은행이 이 시스템을 이용해 대출이동을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정부에 따르면 시중의 200여개 금융회사도 이 시스템에는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정부는 10월 은행권 신용대출을 시작으로 12월 담보대출 및 2금융권 대출로 확대할 계획이다.
■ 은행, “빅테크에 종속된다” 반발
문제는 이 대출이동 서비스를 핀테크 앱에서도 신청할 수 있게 하겠다는 정부 방침에서 불거졌다. 금융결제원의 ‘어카운트인포’ 앱을 통해 비대면으로 대출이동을 하더라도 소비자는 그 전에 각 은행 앱을 비교해가며 금리가 싼 상품을 찾아다녀야 한다. 마침 시중에는 토스, 카카오페이, 핀크 등 플랫폼 업체들이 일부 은행들의 대출상품을 비교·중개하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소비자가 이런 플랫폼에서 원하는 상품을 찾아 즉석에서 대출이동을 신청할 수 있다면, 금리 비교가 쉬워지고 은행간 금리 인하 경쟁이 촉진돼 소비자에게 이익이 돌아갈 수 있겠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시중은행들은 이렇게 될 경우 빅테크에 종속될 수 있다며 참여를 꺼리고 있다. 플랫폼이 대출 ‘쇼핑몰’ 역할을 하고 자사 대출상품이 ‘입점’하는 형태가 되기 때문에, 고객이 플랫폼으로 몰릴 경우 빅테크의 금융산업 장악력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고객에 편의를 준다는 대의명분에는 이견이 없지만 은행은 빅테크와 생사를 두고 다투는 입장에서 고객을 내놓고 중개 수수료까지 내는 것이 불편한 것”이라고 말했다.
■ 속내는 금리인하 경쟁이 싫어서?
하지만 지금도 여러 은행들이 전략적으로 여러 핀테크 업체들과 제휴해 대출상품을 팔고 있다. 정부에 따르면 11일 현재 30~40개 금융회사가 신용대출을 중심으로 대출상품을 플랫폼 기업을 통해 판매 중이다.
일각에서는 은행들이 전면적으로 플랫폼을 통한 대출비교를 확대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금리인하 경쟁이 심화돼 은행 이익이 줄어들고 고객도 타사에 뺏길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라고 본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플랫폼에 내는 수수료는 결국 금리에 반영하기 때문에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라며 “금리를 낮춰야 하는 것이 싫은데 그런 이유를 말할 수 없으니 핀테크에 종속된다는 프레임을 내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의 이런 두려움이 기우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19년 오픈뱅킹(하나의 앱에서 여러 계좌를 연결해 송금·결제를 하는 서비스)이 처음 도입될 때도 주요 은행들은 자칫 고객을 뺏길까 우려했다. 하지만 도입 2년째 되는 지금 은행권에서는 ‘찻잔 속 태풍’에 그쳤다고 평가한다. 앞서 2015년 주거래은행을 쉽게 옮길 수 있는 ‘계좌이동 서비스’를 출시할 때도 같은 우려가 나왔지만 계좌이동 실적이 예상보다 적어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환대출 플랫폼이 나오면 고객이 금리를 찾아 왔다갔다 할 수 있겠지만 은행별로 유리한지 불리한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 정부도 참여 강제 못해…판단은 은행 몫
정부의 정책 목표대로 대환대출이 활성화하려면 대출비교 플랫폼에 많은 은행이 참여해야 한다. 다만 정부가 강제할 수는 없다. 김종훈 금융위 중소금융과장은 “정부는 소비자 편의를 위해 민간에서 하고 있는 대출비교 앱에 대출이동 인프라만 연결하려 한다”며 “은행에 전체 대출 상품을 다 넣으라고 할 계획이 없으며, 참여 여부나 수수료 등은 은행이 결정할 일”이라고 말했다.
대출비교 서비스를 거부할 명분이 없는 시중은행들은 최근 은행끼리 별도의 금리비교 앱을 만드는 방안도 검토했다. 하지만 소비자가 쓰고 있는 핀테크 앱들을 놔두고 굳이 별도 앱을 만드는 것이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금융위도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치면서 현재는 추진 동력이 떨어진 상태다.
정부가 은행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밀어붙일 수 없는 이유도 명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사용자가 많다는 이유로 민간기업인 핀테크 업체에 대환대출 전산 시스템을 연결해주려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핀테크 기업이 부담하는 것은 없고 혜택만 보게 된다.
윤민섭 한국금융소비자보호재단 연구위원은 “금리비교 서비스는 그동안 은행들이 할 수 있었음에도 외면해왔기 때문에, 정부가 핀테크를 이용해 은행의 굼뜬 조직을 움직이려 하는 것”이라며 “은행은 경쟁에 참여하고 핀테크 업체는 수수료를 낮추는 식으로 서로 양보해 소비자 편의를 높이는 쪽으로 합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