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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금융·증권

[현장에서] AI·메타버스 외치는 은행들, 누구를 위한 디지털인가

등록 2021-07-14 16:07수정 2021-07-15 02:49

서울시 중구에 있는 신한은행 디지털 브랜치 ‘디지로그’ 전경. 신한은행 제공
서울시 중구에 있는 신한은행 디지털 브랜치 ‘디지로그’ 전경. 신한은행 제공

“은행 직원이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편리하다고 안내해도 그건 믿지 못하겠다며 반드시 창구에 가서 직원에게 통장을 건네면서 입·출금을 해달라는 어르신들이 많아요.”

최근 한 금융지주 계열사 임원에게서 들은 말이다. 자신이 은행 영업점에서 근무할 때 겪은 일을 전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그는 지나가는 말로 한 얘기였지만 은행 점포의 존재 이유를 떠올리게 하는 상징적인 사례여서 유난히 기억에 남았다.

은행들이 앞다퉈 인공지능(AI)을 도입하고 가상공간인 메타버스에 진출하고 있다. 빅테크·핀테크의 금융업 진출에 대응하기 위한 몸부림인데, 은행이 디지털 전환 앞에서 길을 잃은 느낌을 받는다. 접근방식이 소비자 관점이 아니라 은행 중심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은 지난 12일 서울 서소문지점을 디지털 서비스를 강화한 점포로 바꿔 새로 문을 열었다. 입·출금 등 단순업무는 키오스크(무인단말기)와 디지털데스크에서 스스로 처리하도록 만들었다. 기존처럼 직원과 대면해 상담을 하고 일을 처리할 수 있긴 하지만 그 전에 디지털 기기를 먼저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눈에 띄는 변화로 읽혔다.

케이비(KB)국민은행 여의도 신관에 있는 인공지능 체험존. 케이비국민은행 제공
케이비(KB)국민은행 여의도 신관에 있는 인공지능 체험존. 케이비국민은행 제공

케이비(KB)국민은행은 지난 3월 여의도 신관에 ‘인공지능(AI) 은행원’ 체험공간을 열었다. 키오스크에서 가상의 은행원이 상품안내 등을 하는 식이다. 기존에 사람이 해오던 일의 일부를 인공지능이 대체하는 것이다. 케이비국민은행은 시범 운영을 거쳐 각 영업점에 배치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은행 점포의 디지털화를 보며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은행에 가서까지 인공지능 상담을 받거나 디지털 기기로 일처리를 해야 한다면 굳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은행에 갈 이유가 없다. 온라인 서비스는 언제 어디서든 받을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 아닌가.

요즘 같은 시국에 은행 방문은 무척 번거롭다. 소비자도 웬만하면 온라인으로 처리하고 싶다. 하지만 특정 증빙 서류 발급 등 일부 업무는 반드시 은행에 가야 처리할 수 있다. 인터넷 설명으로는 해결되지 않아 더 자세한 상담을 받기 위해 은행을 찾기도 한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은행 직원과 대면해 소통하는 게 훨씬 빠르고 편리하다. 디지털 전환이 은행 점포가 필요한 사람들을 더욱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최근 하나은행(왼쪽)과 우리은행(오른쪽)이 각각 메타버스에서 진행한 사내행사 모습. 각 사 제공
최근 하나은행(왼쪽)과 우리은행(오른쪽)이 각각 메타버스에서 진행한 사내행사 모습. 각 사 제공

은행들은 또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메타버스(가상현실) 마케팅도 열심히 펼치고 있다. 하나은행, 우리은행은 최근 사내행사를 메타버스에서 진행했다. 국민은행은 메타버스에서 영업점을 구축해 금융서비스를 할 수 있는지 검증에 나서기로 했다.

혁신이 절실한 은행들이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아 가상공간까지 넘보고 있지만, 정작 현실에서 혁신 요구는 외면하고 있다. 소비자가 불편하게 은행에 가야만 처리할 수 있는 대표적인 서비스가 대환대출이다. 정부는 이를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기존에 은행들이 하지 않았던 금리비교 서비스를 핀테크 업체들이 하고 있으니, 정부는 소비자들이 핀테크 앱을 통해 손쉽게 대출이동을 하고 은행의 금리인하 경쟁을 유도해 소비자 편의를 높이려고 한다. 하지만 은행들은 플랫폼 기업에 종속된다는 우려로 반발하고 있다. 은행들은 고객을 위한 디지털 변화라도 은행에 불리할 것 같으면 눈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외치는 ‘디지털 전환’이 진정성 있게 들리기는 어렵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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