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시내 한 은행에 내걸린 대출 등 은행 금융상품 광고판 앞을 한 시민이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사회초년생 김아무개(22)씨는 지난해 5월 목돈이 필요해 대출을 알아봤다. 당시 그는 아르바이트로 월 70만원을 벌고 있었다. 웹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학원을 다니고 싶었지만 아르바이트 수입으로는 생활비와 학원비를 충당할 수 없었다. 갓 스무살이 됐을 때 무심코 저축은행에서 돈을 빌렸다가 연체한 이력이 있어, 은행이나 저축은행에서는 대출 받기 어려웠다. 고민하던 김씨는 청년금융플랫폼 크레파스플러스의 문을 두드렸다.
크레파스플러스는 김씨 동의 하에 그의 휴대폰 충전 주기, 운영체제 업데이트 주기, 앱 사용시간, 인터넷 검색시간, 메시지 사용량과 패턴 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자체 신용등급 가운데 ‘우량’ 수준인 비(B)등급을 받아 대출 승인 기준에 부합했다. 김씨의 ‘디지털 발자국’을 통해 그가 일관성 있는 생활 패턴을 가졌고, 따라서 연체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 인정된 것이다. 김씨는 연 5.5% 금리로 100만원을 대출받았고, 아르바이트를 통해 몇 달 뒤 대출금을 전액 상환했다.
최근 금융권에서 비금융 정보를 신용평가에 반영하는 ‘대안신용평가’가 확산되고 있다. 기존 은행들은 금융정보만 보고 신용을 평가하기 때문에 소득이 낮거나 한 번이라도 연체기록이 있는 이들은 대출을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지난해 1월 개인정보 활용 범위를 확대한 데이터3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에는 핀테크를 중심으로 비금융 정보를 신용평가에 반영하는 실험이 새로운 사업 기회로 떠오르고 있다. 핀테크 업체들은 물론 인터넷은행들도 올해 들어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를 위해 대안신용평가모델 개발에 힘쓰고 있다.
비금융정보를 분석하는 이유는 채무자가 성실하고 일관성 있고 안정적인 생활패턴을 갖는지, 그래서 빌린 돈을 연체하지 않고 성실히 상환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주로 활용되는 비금융정보는 크게 통신정보, 결제·송금정보, 휴대폰 사용기록으로 구분할 수 있다. 통신정보는 많은 금융회사들이 활용하는 대표적인 정보다. 통신요금 납부 이력, 통화 사용량 및 시간대, 해외로밍 기록 등을 통해 얼마나 활동적인지,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가졌는지 등을 파악한다.
문자메시지 사용 패턴으로도 채무자의 성향을 유추할 수 있다. 문자를 주고받을 때 상대방이 3건을 보내고 채무자가 4~5건을 보냈다면, 대화의 마지막 인사는 채무자가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양상이 계속 나타난다면 채무자는 안정적인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카드사들은 자사 결제 내역을 활용한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백화점이나 골프장 결제 기록이 있다면 어느정도 자산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할인쿠폰 조회를 많이 한 경우에도 경제적 습관이 있다는 척도가 될 수 있어 긍정 요소가 된다고 설명했다.
카카오뱅크는 카카오톡의 ‘선물하기’ 내역이나 카카오모빌리티의 택시 탑승 이력을 수집한다. 다만 아직은 신용평가 모형 개발에 참조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선물 주고받는 횟수·패턴이나 택시 탑승 이력 같은 비금융 데이터가 연체율과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수집하는 것”이라며 “선물 많이 받으면 연체율이 낮다는 식으로 일률적으로 얘기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9월께 출범하는 토스뱅크는 토스 앱의 각종 송금 내역을 참고한다. 적금이나 월세 이체 내역이 꾸준히 기록돼 있으면 건전한 소비생활을 한 것으로 보고 심사에 긍정적으로 반영된다.
핀테크 업체에서는 채무자의 휴대폰 사용 기록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배터리나 운영체제 충전주기, 인터넷 사용시간이 일정한지, 주로 사용하는 앱 카테고리가 무엇인지, 타이핑 속도가 빠른지 등을 본다. 휴대폰에 저장된 일정을 통해 얼마나 활동적인지 보기도 한다.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체(P2P) ‘8퍼센트’는 유의미한 통화 상대 수, 위치 정보, 대출 진행 단계별 체류 시간, 계약시 클릭의 정확도 등 400여개 데이터를 활용한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향후 건강정보도 신용평가에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토스는 앱에서 만보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토스 쪽은 현재 만보기 사용기록을 신용평가에 반영하지는 않지만 추후 활용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비금융정보를 통한 신용평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데이터를 정확히 해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특정 패턴을 보이면 신용도가 높다’고 규정할 경우 자칫 데이터에 의한 편견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의 한 핀테크 업체에서는 채무자의 소셜미디어 친구들의 신용등급을 심사에 반영하려고 모형 개발을 했다가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중단하기도 했다. 맞춤법을 잘 지키는지를 신용평가에 활용하는 사례도 있지만, 국내 금융업계에서는 “문맹률이 낮은 한국에서는 적용하기 부적합한 기준”이라고 한다.
데이터3법이 추진될 당시 비금융정보가 금융약자를 포용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배제하는 방향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채무자의 디지털 기록을 봤더니 불성실한 것으로 보여 대출을 거절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신용평가에서 여전히 중요한 건 금융정보이고, 비금융정보는 대출이 가능한 방향으로 활용하기 위해 쓰이는 보조 수단”이라고 강조한다.
8퍼센트 관계자는 “비금융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축적 기간과 수집량이 충분해야 하는데, 아직은 비금융정보와 신용도의 인과관계를 충분히 확인할 만큼 시간이 쌓이지 않아 보조적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기술 개발을 통해 정보를 정밀하게 가공하고 금리 측정이 정교해진다면 금융 소외자들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크레파스플러스를 운영하는 크레파스솔루션의 김민정 대표는 “비금융정보 활용은 고객 동의를 받아야 하므로, 본인이 불리하다고 생각할 경우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수 있다”며 “금융에 대안정보를 활용하지 못한다면 결국 담보가 있는 기득권층만 이익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