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의 안건소위원회(안건소위)가 주요 제재 안건에 대한 처리 방향을 사실상 결정하고 있지만, 심의 과정이 ‘깜깜이’ 방식으로 진행되는데다 나중에 회의록마저 공개하지 않아 안건 처리가 왜곡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 이후
라임펀드를 판매한 주요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들과
요양병원 암입원보험금을 미지급한 삼성생명 제재 건이 9개월가량 안건소위에 계류되면서 대형 금융지주와 재벌 계열 금융회사들의 로비에 취약해질 우려마저 제기된다.
금융위는 주요 안건에 대해 정례회의(또는 임시회의)에서 최종의결한다. 이 정례회의에는 금융위원장과 부위원장, 금융감독원장, 한국은행 부총재, 예금보험공사 사장 등 9명이 참석한다. 그런데 이 회의에 앞서 주요 안건은 이른바 안건소위에서 처리 방향이 사실상 결정돼 회의에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명분은 안건이 많고 복잡한 경우가 많아 정례회의에서 심층적으로 논의하기 어려워 사전 조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안건소위의 운영방식을 둘러싼 잡음이 그동안에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대부분 안건이 안건소위에서 한두차례 심의를 한 뒤 정례회의에 부의가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해 말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는 게 사정을 아는 금융권 관계자들의 얘기다. 대표적으로 라임 판매 증권사들과 삼성생명 제재 건의 경우 안건소위만 최소 5차례 이상 열린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는 사이 안건소위에서만 무려 9개월가량 계류돼 있는 상태다.
안건소위는 금융위 상임위원 2명과 비상임위원, 증선위 상임위원, 법률자문관 등 5명으로 구성돼 있다. 제재 건의 경우 금감원 검사국과 제재 대상 금융회사 관계자를 출석시켜 진술과 대심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처리 지연 이유에 대해 “모든 사안들을 제대로 검토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안건 처리가 지연되면서 금융회사의 로비가 먹혀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제재 대상 회사들은 로펌을 법률대리인으로 내세워 대응을 한다. 이들 금융회사와 로펌에는 금융위 출신 전관들도 몸담고 있어 이들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다.
또한 안건소위가 안건 처리 방향을 사실상 결정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지만, 투명성이 결여돼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심의 과정이 외부에 전혀 공개되지 않는 깜깜이 식으로 진행되는 탓이다. 예컨대, 삼성생명 제재 건의 경우 오랫동안 심의를 진행하다가 최근 법령해석심의위원회를 소집해 법률 자문을 구하면서도 일정이나 의제는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사후에도 심의가 투명하게 이뤄졌는지 알 수도 없다. 정례회의는 최소한 안건 목록과 회의록이 나중에라도 공개가 되지만, 안건소위는 이런 것조차 하지 않는 탓이다. 왜곡된 의사결정을 내려도 소위 구성원 몇 명만 입을 다물면 외부에선 알기 어려운 구조다. 이에 따라 금융회사들의 로비도 이 안건소위 단계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게 사정을 아는 관계자들의 말이다.
금융위 정례회의에 참석했던 한 전직 고위관계자는 “주요 안건에 대해 사실상 안건소위에서 처리 방향이 결정돼서 올라오기 때문에 정례회의에서 이를 바꾸기는 사실상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또다른 금융당국 전직 임원은 “정례회의는 의사록 요약본이 나중에 공개가 되지만 안건소위는 이런 것조차 없다”며 “안건소위 운영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정은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도 마찬가지다. 증선위는 자본시장 및 기업회계 관련 관리감독을 담당하는 금융위 산하 기구다. 증선위도 관련 안건의 처리 방향을 사실상 안건소위에서 결정을 한 뒤 회의에 올리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증선위 안건소위는 증선위 상임위원과 비상임위원 3명, 법률자문관 등으로 구성된다. 현재 증선위는 코스닥 공매도 상위 종목인
에이치엘비 불공정거래 건 처리를 8~9개월가량 미루고 있어 관련 기업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는 상태다.
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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