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 신입사원 채용에 영향력을 행사해 특정 지원자가 합격하도록 한 혐의로 4년 가까이 재판을 받아온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전 하나은행장)이 11일 오후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서울서부지법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하나은행은 2016년부터 해외금리와 연계한 파생결합펀드(DLF)를 팔았다. 이 펀드는 1년간 5500만원을 얻기 위해 최대 22억원을 잃을 수 있는 고위험 상품이다. 프라이빗뱅커(PB)들은 원금을 잃기 두려워 하는 고객들의 투자성향을 멋대로 ‘공격투자형’으로 바꿔 전산 입력하고 이들에게 펀드를 팔았다. 회사는 성과지표에서 다른 은행들보다 소비자보호 배점은 낮추고 ‘비이자수익’ 배점은 높여 펀드 판매 경쟁을 유도했다. 하나은행은 이 펀드를 총 3985억원어치 팔았고 이 가운데 내부규정을 위반해 판매한 규모가 2500억원(62.7%)에 이른다. 이후 2019년 펀드 부실 사태가 벌어지고 대규모 소비자 피해로 이어졌다.
이 같은 하나은행의 위법한 판매행위는 지난 14일 선고된
법원 판결문에서 자세히 드러났다. 당시 은행장이었던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이 금융위원회로부터 문책경고를 받자 법원에 취소소송을 냈는데 서울행정법원이 “징계가 정당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함 부회장에게 “이 사건은 법 위반 정도가 중대하고 사회적으로 크게 물의를 일으켜 그 책임이 막중하다”고 했다.
대규모 소비자피해를 일으킨 사건의 총책임자가 법원 판결도 무시하고 책임이 더 막중한 자리인 그룹 회장에 오르려고 한다. 함 부회장이 받은 징계는 향후 3년간 금융회사에 취업할 수 없는 중징계다. 재판부는 징계의 적법성을 먼저 따져보기 위해 징계효력은 일단 정지한 상태에서 재판을 했다. 약 1년9개월 심리 끝에 징계가 정당하다는 결론이 났다. 함 부회장의 징계효력은 4월14일 되살아난다. 함 부회장을 회장 후보로 추천한 하나금융은 징계효력 발생 전인 이달 25일 주주총회에서 함 후보가 회장에 선임되면 문제없다고 주장한다. 징계효력 발생일과 주주총회 간 ‘시간차’를 이용해 회장에 등극하려는 꼼수다. 펀드 불완전판매로 소비자에게 피해를 입히고 과태료·업무정지 징계 등으로 회사와 주주에게도 피해를 끼친 최고책임자가 전혀 책임지지 않고 자기 안위만 챙기는 낯부끄러운 행동을 보이고 있다.
함 부회장의 행태에 정치권·시민단체가 비판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 5명은 지난 16일 “감독당국의 중징계를 받은 임원이 금융지주 회장으로 선임될 경우 하나금융지주뿐 아니라 우리 금융산업 전반의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비단 하나은행뿐 아니라 펀드 부실사태를 일으켰던 다른 은행들의 최고경영자도 좀처럼 책임지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도 함영주 부회장과 같이 파생결합펀드 불완전판매 책임으로 문책경고를 받았지만 금융당국과 소송전을 벌이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평소 은행들은 “정부의 금융규제가 심해 금융산업이 발전하지 못한다”고 불만을 표출한다. 지난해 은행연합회는 당국에 “금융회사가 자율로 내부통제를 강화하겠으니 금융당국이 금융회사를 통제하려면 법적 근거를 명확히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들의 ‘자율통제 강화’ 선언 이후 달라진 모습은 찾을 수 없다. 함영주 후보의 회장 선임 강행은 오히려 은행의 자율규제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만 보여준다. 은행 경영진들은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면 결국 타인에 의해 통제받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지 말기 바란다.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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