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제롬 파월 의장. 로이터 연합뉴스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여파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딜레마도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은행 시스템을 둘러싼 불안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으면서 정책금리를 올리는 데 따른 금융위기와 경기침체 리스크가 한층 커진 탓이다. 물가안정과 금융안정 사이의 기로에 선 연준이 어떤 선택을 할까.
19일
연준 집계를 보면, 연준이 지난 9∼15일 재할인 창구(discount window)를 통해 은행 등 예금기관들에 빌려준 금액은 1528억5700만달러에 이른다. 13일부터 가동된 은행기간대출프로그램(BTFP)으로는 사흘간 119억4300만달러가 빠져나갔다. 일주일 만에 총 1648억달러(약 216조원)가 은행권에 풀린 것이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최대 기록(1100억달러)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은행권의 자금 압박이 그만큼 심하다는 얘기다. 이는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사태로 불안 심리가 확산되면서 다른 중소규모 은행에서도 예금 인출이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특히 당국의 진화 작업 이후에도 다른 은행들의 위기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은 예금주 입장에서 불안을 더하는 요인이다. 미국 지역은행 퍼스트 리퍼블릭이 대표적이다. 지난해부터 위기설에 시달린 투자은행 크레디스위스(CS)의 유동성 리스크도 최근 재차 부각되고 있다.
연준 입장에서는 통화정책의 딜레마가 한층 깊어진 상황이다. 일단 금리를 올리는 데 따른 부담이 이전보다 훨씬 커졌다. 실리콘밸리은행 사태의 기저에는 고금리 국면에 취약한 자산운용 구조가 있다. 저금리 시절에 장기물 채권을 대거 사들인 탓에, 이번처럼 금리 상승기에 자산을 현금화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대규모 손실을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연준이 계속해서 금리를 인상하려면 비슷한 사태가 다른 데서 재현될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휘청이는 은행 시스템이 실물경제에 미칠 악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이제까지 미국은 경기의 연착륙은 물론 ‘무착륙’(no landing)도 가능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으나, 이번 사태가 장기화하면 얘기가 달라질 전망이다. 은행들의 신용 공급 기능이 위축돼 가계소비와 기업투자가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는 탓이다. 이 경우 연준의 금리 인상은 이미 나빠지고 있는 경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금리를 올리지 않는 쪽의 리스크도 작지 않다. 아직까지도 미국 인플레이션은 안정적인 둔화 추세라고 단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를 보면, 에너지·식료품을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는 한 달 만에 0.5% 올랐다. 전달(0.4%)보다 상승률이 더 높아진 것이다. 고용 지표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임금 오름세는 소폭 둔화했지만, 비농업 일자리는 31만1천개(계절조정) 늘면서 여전히 시장 예상치를 웃돌았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고용 지표의 호황은 우리가 물가를 잡는 데 오래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보여준다”고 수차례 발언해왔다.
시장에서도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이날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 페드워치를 보면, 지난 17일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 참가자들은 오는 22일(현지시각)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금리를 동결할 확률이 40% 안팎이라고 봤다. 0.25%포인트 인상할 확률은 60% 수준이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