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뚫린 투망 배부른 투기
론스타 탈세 등 혐의 제재조항 빠져있어
영남제분 자사주 장외매각은 공시의무 없어 ‘147억원의 조세포탈과 860만달러의 불법 외화반출’ 최근 외환은행 재매각을 서두르고 있는 론스타가 조사받고 있는 혐의들이다. 검찰조사에서 론스타의 위법사실이 밝혀지면 어떻게 될까? 시민단체들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론스타는 대주주 자격에 문제가 생기면 당장 외환은행 주식을 비싸게 파는데 중대한 차질이 생기게 된다. 3조원 안팎의 막대한 차익에 대한 기대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작 금융감독 당국은 시민단체들의 주장에 머리를 젓는다. 도대체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현행 금융관련법들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기 때문이다. 금융산업구조개선법, 금융지주회사법에 이어 은행법, 자산유동화법, 증권거래법 등 금융관련 법령에서 잇따라 제도적인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관련 법령 전반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 작업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은행법은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의 경우 은행 지분을 4% 이상 보유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때처럼, 부실 금융기관의 경우 금융감독당국의 승인을 받아 은행지분을 10% 이상 보유할 수 있다. 은행법 시행령은 10% 초과 보유 요건으로 ‘공정거래법이나 금융관련 법령을 위반해 처벌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고 정해놓았다. 이는 론스타가 금융관련 법령을 위반해 형사처벌을 받으면 대주주 자격을 잃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현행법에 규정된 금융관련 법령 25개에는 현재 론스타가 조사받고 있는 탈세나 외국환거래법은 빠져있다. 재경부는 지난해 이후 탈세 등도 대주주 적격성 심사기준에 넣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이다. 론스타는 지난달 가짜 컨설팅 계약을 맺은 뒤 불법으로 용역비를 해외로 빼돌려 자산유동화법을 위반한 사실이 적발됐다. 자산유동화법은 금융관련 법령에 포함돼 있는 만큼 드디어 꼬리가 잡힌 듯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또 다른 구멍이 드러났다. 자산유동화법에는 처벌조항이 빠져 있어, 론스타를 형사처벌할 수 없는 길이 없음이 드러난 것이다. 은행법 시행령에는 탈세 등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대주주 자격을 문제삼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조항에는 은행지분의 10% 이상 초과보유를 신청할 때 적용한다는 전제가 붙어 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론스타의 경우 최초 승인신청 때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대주주 자격을 문제삼기 힘들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이 요건은 승인신청 당시뿐만 아니라 승인 이후에도 필요한 부분”이라고 주장한다. 은행법은 이 대목에서도 역시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이해찬 전 총리의 3·1절 골프파동을 계기로 드러난 영남제분의 자사주 매각 건은 금융감독당국의 ‘면피주의’ 행태를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사례다. 영남제분은 지난해 11월25일 은행에 신탁한 자사주 195만주(9.38%)를 7개 기관에 매각해 67억원의 차익을 남기면서도, 이를 시장에 알리지 않았다. 자사주를 장외매각할 경우 공시 의무가 없다는 점을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다. 영남제분 주가는 한달새 5100원에서 3400원으로 폭락했고, 투자자들은 영문도 모른채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금감원은 “현행 규정상 문제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다가, 제도적 헛점을 인정하고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뒷북을 쳤다. 금융관련 법령들에서 헛점이 노출되고 있는 것은 대부분의 법령이 외환위기 직후 조급히 개정된 데다 최근 몇년사이 금융시장 환경이 급변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금융감독당국의 안이한 자세도 큰 이유가 되고 있다. 금융감독당국 관계자는 “최근 5~6년 사이 금융시장 환경이 급변했으나 제도는 뒤따라가지 못하고 고 감독당국도 이를 바로잡으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부족하다”고 털어놨다.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은 “‘금융감독기구설치법’에 감독기구가 재량적으로 처벌이나 시정조처를 내릴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조항을 마련해야 하고, 이를 위해 감독당국이 엄정하고도 형평성있게 법 집행을 함으로써 신뢰를 쌓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 기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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