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가자기구 북부 지역 주민들이 13일 동물이 끄는 수레에 올라타고 남쪽으로 피란을 가고 있다. 가자시티/AP 연합뉴스
전쟁 공포가 전세계 경제에 이슈로 또다시 대두했다. 지난해 2월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채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스라엘-하마스 간 무력충돌 분쟁은 가뜩이나 취약한 세계 경제에 검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는 늘 세계 경제에 화약고였다. 중동지역의 분쟁이 유가 불안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오펙플러스의 감산 정책으로 유가가 배럴당 90달러 수준에서 등락하던 시기에 불거진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은 유가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 우려를 증폭시키는 화약고가 될 수 있다. 물가 급등과 경기침체가 동반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현실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글로벌 주식시장은 상승 랠리를 이어가고 유가도 하락하는 의외의 현상이 연출되고 있다. 단기적 상황만을 가지고 중동 사태를 평가하기는 이른 감이 있지만 금융시장이 과거와는 다른 반응을 보이는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낮은 확전 가능성이다. 이스라엘이 지상전을 준비하는 등 전쟁은 장기화될 조짐이지만 금융시장이 우려하는 주요 원유 생산국과 이스라엘 간 전면전 시나리오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는 이전 중동전 사례와 달리 중동지역 내 원유 생산과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원유 수송에 당장 큰 타격이 없을 것을 시사한다. 이번 사태로 주요 산유국 모임인 오펙플러스의 추가 감산이 오히려 어렵게 된 것도 유가 하락 요인이다.
둘째, 안전자산 선호와 경기 둔화 우려에 따른 금리 하락이다. 지난 9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미국 국채 금리를 중심으로 글로벌 주요국 국채 금리가 속등하면서 금융시장은 2013년 긴축발작과 유사한 경색 현상을 맞이했다. 국내 역시 주가, 채권가격 및 원화 가치가 동반 하락하는 트리플 약세 현상에 시달렸다. 이처럼 금리 속등에 속수무책이던 글로벌 금융시장에 중동 전쟁 리스크가 국채 금리 상승세에 제동장치 역할을 했다. 글로벌 자금의 안전자산 선호 현상과 경기 둔화 우려가 맞물리면서 국채 금리가 다시 급락한 것이 주식시장 등 글로벌 금융시장에 단비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전쟁 리스크를 과소 평가해선 안 된다. 전세계가 사실상 3가지 전쟁을 치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그리고 기술 패권을 둘러싼 미-중 패권 전쟁으로 전세계 경제는 물리적 및 경제적 충격에 동시에 노출됐다. 2024년 대선을 앞두고 증폭되고 있는 미국 내 정치적 갈등도 또 다른 위험요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 세계 성장률을 2.9%로 전망했다. 미국을 포함한 주요 7개국(G7)의 내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대부분 0~1%대로 전망했다. 매우 이례적인 저성장 전망이다. 중동 리스크가 조기에 진정된다면 다행이지만 기존 전쟁(러-우, 미-중 기술패권 전쟁)에 더해 중동 전쟁마저 장기화 혹은 확전된다면 세계경제는 제로 성장에 직면할 수도 있다. 세계 경제가 1980년대 초반 같은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하이투자증권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