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장벽 없애야”…은행권 “안정성 위협”
급여이체 연 100조 시장…재경부-한은도 입장 갈려
급여이체 연 100조 시장…재경부-한은도 입장 갈려
5년차 회사원인 이아무개(33)씨는 월급통장을 요즘 유행하는 한 증권사의 종합자산관리계정(CMA)으로 바꿨다. 은행 이자보다 높은 연 4%대의 수익률을 보장한다기에 솔깃한 것이다. 하지만 막상 옮기고 나니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장 매달 10만원씩 붓는 청약통장으로 자동이체가 안 된다. 또 카드사용 대금도 자동결제가 안 돼, 별도의 은행통장을 만든 뒤 수수료까지 부담하며 자금이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상호저축은행에 가입한 적금계좌에도 자금이체가 되질 않아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했다. 급히 현금이 필요해도 수수료를 내고 다른 은행 계좌로 이체한 뒤 현금입출금기에서 또 수수료를 내고 찾을 때에는, 은행 월급통장으로 되돌려야 하나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이씨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이른바 ‘지급결제 기능’이 금융권 중에서 은행에만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일부 시엠에이 상품은 증권사가 은행 쪽에 별도 수수료를 내고 계좌를 빌려 자금이체 서비스가 되기는 하지만 특정 카드대금의 결제에 그치는 등 기능이 제한적이다. 금융결제원 소액결제 시스템을 통해 이뤄지는 입출금과 자금이체 등의 업무가 여기서 말하는 좁은 의미의 지급결제다. 증권·보험사들은 이런 지급결제 기능을 은행처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목을 매고 있다. 현재 은행을 통한 급여이체 규모는 연간 100조원대에 이른다. 증권사에 지급결제 기능이 주어져 증권계좌 이용이 자유로워지면 앞으로 2년간 20조원 정도가 증권사에 유입될 것으로 금융연구원은 보고 있다. 시중은행들과 한국은행은 지급결제 시스템의 안전성과 안정성이 크게 위협받을 수 있다며 결사 반대다. 증권·보험사는 주가가 폭락하거나 대형 금융사고가 터졌을 경우, 유동성이 급격히 악화돼 결제 불이행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기획팀 관계자는 “증권관련 계좌는 투자자산의 가치가 고정돼 있지 않고 투자자산의 처분을 통한 현금화에 시간이 많이 걸려 유동성 및 신용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배 한국은행 금융산업팀장도 “증권금융에 고객예탁금을 100% 예치하는 방식으로 위험을 분산한다고 하지만, 예치에는 하루의 시차가 있다”며 “그 사이에 지급중지 사태가 벌어질 경우 다른 고객들의 예탁금을 가지고 임시로 지급결제 서비스를 하는 것은 법적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은행권 쪽에선 소비자들이 편의성을 강조하면서, 안정성 문제는 해결책이 있다고 반박한다. 증권업협회 전문위원인 이호찬 박사는 “증권사들이 받은 고객예탁금 중 현금 부분만 증권금융이 받아 금융결제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가하락에 따른 유동성 위험은 없다”며 “고객들의 편의성과 수익성 제고를 위해서는 은행의 지급결제 기능 독점을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보험개발원 보험연구소의 이태열 연구실장은 “전자금융 발달 등으로 비금융기관에까지 지급결제 기능이 확산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재경부도 증권·보험쪽의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정은보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은 “지급결제는 기본적으로 ‘인프라’”라며 “지급결제 기능에 대한 업종간 장벽을 허무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고 말했다. 최근 발표된 보험제도 개편안에서 보험사의 지급결제 업무 허용을 중·장기 과제로 넘기면서 1라운드는 은행권의 승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증권사에 소액지급결제 기능을 일부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통합법(금융투자업과 자본시장에 관한 법률)이 올 정기국회에서 처리될 예정이어서 2라운드의 열기가 뜨거운 상태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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