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제창 의원 국감서 주장…금융당국 책임론 도마에
라회장 ‘버티기’ 나섰지만 금감원·정치권 압박 거세
라회장 ‘버티기’ 나섰지만 금감원·정치권 압박 거세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금융실명제법 위반과 관련해 중징계 통보를 받은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승부수’를 던졌다. 조기에 자진사퇴하기보다는, 경영권 공백을 막고 후계구도를 구축하기까지 최대한 시간을 벌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라응찬 책임론’에 대한 금융당국의 입장이 확고한데다 ‘신한사태’와 관련한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고, 다음달 신한은행에 대한 금감원의 강도 높은 종합검사도 예정돼 있어, 라 회장의 정면돌파 시도가 먹혀들지는 미지수다.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라 회장과 신한금융을 둘러싼 새로운 의혹들이 속속 제기되는 등 정치권 움직임도 라 회장 쪽에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 라 회장, 내년 3월까지 회장직 버티기? 라 회장은 11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거취를 고민하고 있다”며 “가능한 한 공백 없이 갈 수 있으면 하는 게 희망사항”이라고 밝혔다. 그는 신상훈 신한지주 사장, 이백순 신한은행장과 함께 3명이 동반퇴진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 혼란기에 동반퇴진은 쉽지 않다”며 “조직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누군가는 수습해야 한다”고 말했다. 라 회장이 언급한 ‘누군가’는 신 사장이나 이 행장이 아니라 본인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신한사태가 어느 정도 마무리될 때까지는 물러날 의사가 없음을 시사한 셈이다.
그는 5분가량 진행된 질의응답에서 ‘조직의 안정과 발전’을 세차례나 언급했다. 경영 공백과 혼란을 막으려면 자신이 물러나서는 안 된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강조한 것으로 읽힌다. 금융권에서는 라 회장이 내년 3월 주주총회 때까지 회장직을 유지하면서, 조직을 추스르고 후계구도를 본인의 의도대로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보고 있다.
라 회장은 금감원에서 문제 삼고 있는 실명제법 위반에 대해서도 “상세한 자료를 제출하고 있다”며, 적극 소명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희건 명예회장 고문료 횡령에 가담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신 사장이 뭐라고 했는지 모르지만, 저하고는 관계없다”고 단호하게 부인했다. 라 회장은 지난 7일 미국에서 급거 귀국한 지 사흘 만인 이날 다시 뉴욕으로 출국했다. 애초 잡혀 있던 국외 투자자 대상 기업설명회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라는 게 신한지주 쪽 설명이다. 금융권에서는 라 회장이 비상 상황에서도 국외 경영현안을 직접 챙김으로써, 현직 유지에 대한 강한 의욕을 보여주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 “라 회장 가·차명계좌 1000개 넘고 수백억원 운영” 라 회장 쪽의 희망 섞인 구상과는 달리 금융당국과 정치권 쪽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다음달에 이뤄질 금감원의 신한은행 종합검사 이후 라 회장에 대한 책임 문제가 거론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날 국감은 시작부터 라 회장 증인채택 문제를 두고 여야가 논란을 벌인 가운데, 신한금융과 관련한 새로운 의혹들이 터져나왔다. 특히 야당 의원들은 “금융당국이 정권의 비호 아래 라 회장 봐주기로 일관해 사태를 키웠다”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조영택 민주당 의원은 라 회장의 차명계좌 운영 규모가 수백억원 규모에 달한다는 의혹을 제기한 뒤 “라 회장이 아무런 제재 없이 지난 3월 연임에 성공한 데는 결과적으로 금융당국의 묵인·방조와 직무유기가 있었기 때문 아니냐”고 추궁했다. 우제창 민주당 의원도 금융당국 책임론에 가세했다. 우 의원은 자체 입수자료를 근거로 금감원이 지난해 5~6월 신한은행 종합검사 때 라 회장의 금융실명제법 위반 사실을 파악하고도 은폐했다고 주장했다. 우 의원은 “금융위가 지나치게 손을 놓고 방조하고 있다”며 “검찰과 금융당국이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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