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인수전 관련 담당자 입장
채권단, 졸속검증 뒤 자금출처 문제 해결 ‘오락가락’
현대차 ‘판 흔들기’ 현대그룹 ‘불안한 소명’ 의혹 키워
현대차 ‘판 흔들기’ 현대그룹 ‘불안한 소명’ 의혹 키워
현대건설 인수전이 갈수록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 채권단의 ‘졸속 검증’과 현대그룹의 ‘버티기’ 전략, 현대자동차그룹의 끊임없는 ‘흔들기’가 얽히면서, 현대건설 인수전은 진흙탕 싸움으로 전락하는 모양새다.
■ 불투명한 현대그룹 현대그룹이 조달한 1조2000억원의 출처는 인수전의 판을 뒤흔들 ‘판도라의 상자’다. 현대그룹은 채권단의 출처 요구가 이어지자 “프랑스 나틱시스은행의 대출금”이라고 소명했지만 무담보·무보증 대출이라고 밝히면서 의문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대출계약서를 제출하라는 채권단의 요구에도, 현대그룹은 “양해각서를 맺으면, 채권단이 요구하는 추가해명을 하겠다”고 응수했다. 현대그룹 내부에선 채권단의 자금 출처 규명 요구에도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 역시 스스로 감당할 짐일 뿐, 채권단이나 금융당국이 개입할 이유는 없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그러나 현대건설은 2000년 유동성 위기 이후 공적자금이 투입된 ‘국민 기업’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우량기업인 대우건설을 인수해 동반부실화한 사례를 반복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대그룹 계열사들이 2조원 넘는 회사채 발행 계획을 밝혔는데, 현대그룹이 부실화되면 금융시장에 미칠 파장은 엄청날 것”이라며 “개별 기업의 일로 치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 ‘오락가락’ 채권단 현대건설 채권단의 졸속 검증 역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외환은행 등 현대건설 채권단이 현대건설 우선협상대상자를 결정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20시간이었다. 자금 출처 문제가 불거진 뒤에도 “양해각서 체결 전에 자금 출처를 조사할 계획은 없다”(19일)→“양해각서 체결 시기를 늦추겠다”(22일) →“소명서를 받은 뒤 양해각서를 맺겠다”(23일)고 말을 바꿔 혼선을 빚었다.
금융권에서는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과 다른 채권기관인 정책금융공사·우리은행의 이해관계가 달라 채권단이 일관성 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건설이 부실화할 경우 타격을 입게 될 정책금융공사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반면, 외환은행의 경우 대주주인 론스타가 지분매각을 앞두고 있어 매각을 서두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과정에서도 ‘자금 소유 여부만 확인되면 된다’는 외환은행과 ‘자금 출처를 확인해야 한다’는 정책금융공사가 갈등을 빚은 것으로 전해졌다.
채권단은 이날 현대그룹에 현대건설 인수자금의 출처에 대한 증빙자료를 28일까지 추가로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채권단은 현대건설 인수자금에 대한 소명 자료가 미흡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 ‘판 흔들기’ 나선 현대차 현대차그룹의 ‘활약상’은 인수전 뒤에 더 빛나는 모양새다. 지난 19일 오후 현대차그룹 관계자들이 국회 의원회관에 나타났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실을 대상으로 현대그룹의 1조2000억원 자금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의 스크랩을 돌리러 나타난 것이다. 한 의실 관계자는 “당시 자리를 비워 만나지 못했는데, (현대차 쪽에서) 전화를 걸어 ‘기사 스크랩을 꼭 확인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며 “일부 여당 의원들을 설득해 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사장의 현안보고까지 성사시킨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평가점수 차이가 1점 미만이었던 만큼, 1조2000억원의 성격에 따라 우선협상대상자가 뒤집힐 수 있다는 기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이 일부 언론사와 국회를 상대로 로비를 펼치고 있다는 루머도 끊이지 않는다. 일단 현대그룹은 이번 논란의 진원지로 현대차그룹을 지목하며 25일 현대차를 서울중앙지검에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소·고발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이미 끝난 인수전을 두고 판 흔들기에 나서면서 인수전을 이전투구로 만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최혜정 황예랑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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