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경기 침체 이어져
연체율 30%대 이르러
내년 부실채권 4조 전망
충당금 강화로 손실 커져
만기도래 후순위채도 부담
연체율 30%대 이르러
내년 부실채권 4조 전망
충당금 강화로 손실 커져
만기도래 후순위채도 부담
저축은행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악몽’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말 자산관리공사(캠코)에 3조8000억원어치의 부실 피에프 채권을 매각했지만, 부동산 경기 부진이 이어지면서 새로운 부실채권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일단 내년 구조조정기금의 저축은행 한도를 늘리고, 올해 말까지 1조원 규모의 부실채권 매입을 추진하는 등 ‘급한 불 끄기’에 나섰지만, 저축은행의 혹독한 겨울나기는 이어질 전망이다.
■ 저축은행, 내년이 더 어렵다 지난 3일 오후 국회 정무위원회는 진동수 금융위원장과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 회의를 열어, 저축은행 대책을 논의했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저축은행 부실채권 매입 규모를 2조5000억원에서 3조5000억원으로 증액하는 수정안을 제출하자, 의원들이 현안보고를 요구한 것이다. 국회 정무위 관계자는 6일 “이날 연체율 등에 대한 보고가 있었는데, 예상보다 심각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저축은행의 최근 피에프 연체율은 지난 6월 말(8.7%)보다 3배 올라 30%대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사업성 악화 추세가 이어질 경우, 내년도 피에프 부실채권이 4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 9월 말 현재 저축은행의 피에프 대출잔액(12조4000억원)에 ‘악화우려 비율’(31.2%)을 따져 나온 금액이다. 특히 피에프 대출의 70%가 ‘브리지론’인 점을 고려하면 부실은 더욱 가속화할 조짐이다. 브리지론은 공사가 시작되기 전 사업부지 매입 등을 위한 중간단계의 대출이다. 토지 매입→인허가→시공사 선정을 거쳐 공사가 시작되면, 시중은행의 본피에프로 전환돼 브리지론을 갚게 되는 구조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 회복이 늦어지고 은행의 본피에프 대출이 중단되면서 브리지론의 ‘출구’는 사실상 막힌 상황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최근 사업이 지연되면서 연체 금액이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부동산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미분양 주택·상가 등이 해소된 뒤에 추가 공급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저축은행의 브리지론이 제자리를 찾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발등의 불’을 끄더라도 내년에는 ‘묵은 숙제’를 풀어야 한다. 캠코는 2008년 3년 기한의 환매 또는 사후정산 조건으로 저축은행 피에프 채권을 인수했다. 캠코가 2008년 말과 2009년 초에 걸쳐 저축은행에서 사들인 부실 부동산 피에프채권은 1조7000억원이지만, 지난 9월 말 현재 캠코가 시장에 매각한 규모는 300억원대에 그친다. 내년 말까지 캠코가 이를 시장에 팔지 못하거나 매입가격보다 싸게 팔 경우엔 저축은행이 이를 되사거나 손실을 보전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자본을 늘리기 위해 발행한 금리 연 8%에 이르는 후순위채도 부담이다. 주요 저축은행이 2006년에 발행한 후순위채는 2500억원대에 이른다. 만기가 5년 이상 6년 미만인 점을 고려하면, 내년에는 원금을 돌려주거나 만기연장을 해야 하는데 현재 여력으로 볼 때 쉽지 않다.
■ “위기를 기회로” 살길 모색 분주 이에 저축은행 업계에서는 “살길은 터줘야 할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온다. 피에프 연체율은 치솟는데, 충당금 적립 요건은 강화돼 손실폭이 커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금융당국은 요주의는 2%에서 7~10%, 고정 이하는 20%에서 30%로 높이도록 지도한 바 있다. 저축은행 업계는 현재 충당금 적립기간 3년을 5년 이상으로 연장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저축은행중앙회 관계자는 “이 상태로 가다가는 저축은행 업계가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다”며 “수익은 안 나는데 충당금으로 손실은 커지는 구조”라고 털어놨다. 내년에는 정부와 맺은 양해각서의 조건인 ‘2분기 연속 비아이에스(BIS) 비율 8% 충족’을 맞추지 못한 은행들이 대거 ‘매물’로 나올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가격에 대한 시각차가 커 저축은행 인수·합병을 통한 구조조정도 녹록지 않다. 사려는 쪽은 부동산 피에프의 위험을 고려해 가격을 낮추고, 팔려는 쪽은 제값을 받겠다는 의지가 강한 탓이다.
그러나 이번 피에프 사태가 저축은행 체질 개선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부동산 대출 등 몸집 불리기에만 매달렸던 영업행태를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정부가 피에프 대출 규제를 강화한 뒤 저축은행들은 소액대출, 중소기업 금융, 중고차 금융 등으로 영업 분야를 확대하고 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몰려다니기 식으로 대출을 편중했던 것에 대한 위험을 충분히 경험했다”며 “리스크를 분산시키면서 견실한 포트폴리오를 짜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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