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 대출계약서 요구에
현대그룹 끝까지 버틸 태세
MOU 해지땐 소송전 불보듯
현대그룹 끝까지 버틸 태세
MOU 해지땐 소송전 불보듯
현대건설 채권단과 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그룹, 예비협상대상자인 현대자동차그룹 간 갈등이 계속 꼬이면서 현대건설 매각 작업은 표류할 공산이 커졌다. 현대건설 인수자금을 둘러싼 의혹이 끝내 풀리지 않은 채 채권단이 양해각서(MOU)를 파기한다고 하더라도 현대그룹의 반발로 장기 소송전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오는 14일 소명자료 제출 시한을 앞두고 현대그룹과 채권단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앞서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인수자금 출처를 소명하라는 채권단의 최후통첩에도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현대건설 채권단은 지난 7일 현대그룹에 공문을 보내 “프랑스 나틱시스 은행 예금 1조2000억원에 대한 대출계약서와 동양종합금융증권 투자금 8000억원에 대한 소명자료를 14일까지 제출하라”고 통보했다. 채권단은 공문에서 “소명자료를 시한까지 제출하지 않으면 주주협의회 결의를 통해 양해각서 해지 여부를 포함한 처리방안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그룹이 최후통첩에 불응할 경우,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박탈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하지만 현대그룹은 “나틱시스 은행 발행의 확인서까지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채권단이 대출계약서를 제출하라고 하는 것은 인수·합병(M&A)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로서 매우 부당하고 불합리하다”며 자료 제출 요구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만약 현대그룹이 14일까지 기존 입장을 고수하면, 채권단은 주주협의회를 소집해 공언해온 대로 현대그룹과 맺은 양해각서 해지 수순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양해각서 해지 다음 단계에 대한 채권단의 선택이다. 채권단은 우선 예비협상대상자인 현대차그룹과 양해각서를 맺고 매각 협상을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현대그룹이 매각 작업 중지 가처분 소송 등 법적으로 대응할 게 뻔하다. 특히 현대그룹뿐 아니라 인수·합병(M&A) 전문가들 사이에도 채권단이 영업기밀에 해당하는 대출 계약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데 대해 관행에 맞지 않고 무리한 조처라는 의견이 많은 상황이어서, 법원이 현대그룹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현대차그룹이 지난달 입찰에서 탈락한 이후 승복하지 않은 채 계속 문제제기를 해왔고, 현대그룹과 양해각서를 체결한 외환은행에서 대규모 예금을 빼내는 등 일종의 ‘입찰 방해’ 행위로 비치는 실력 행사를 한 만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이 일수도 있다.
채권단이 양해각서를 해지한 뒤 현대건설 매각 작업 자체를 무산시키고, 훗날을 도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채권단 스스로 매각 작업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고,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 양쪽으로부터 반발을 부를 수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만약 현대그룹이 소명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다면 주주협의회를 열어 합리적인 시간 안에 양해각서 해지를 비롯한 후속조처를 결정할 것”이라며 “우선협상대상자를 현대차그룹으로 바꿀지, 아니면 매각작업을 무산시킬지는 미리 예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매각작업을 무산시키고 새로 딜을 시작해도 똑같은 갈등이 되풀이될 수 있고, 예상과는 달리 현대그룹이 적절한 소명자료를 제출할 수도 있어, 여러 가지 변수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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