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섣부른 실명 거론 탓…“1000번대 대기자까지”
김석동 위원장 자제 요청 안먹혀…오늘이 확산 고비
김석동 위원장 자제 요청 안먹혀…오늘이 확산 고비
저축은행 부실 ‘속타는’ 부산
21일 오전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부산행 첫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부산저축은행 계열 5곳에 내려진 영업정지 조처가 부산지역 저축은행 전반의 예금인출 사태(뱅크런)로 번질 조짐을 보이자, 서둘러 ‘달래기’에 나선 것이다. 22일에는 보해저축은행 소재지인 목포를 찾을 예정이다. 금융당국은 시장의 불안심리가 확산되지 않으면 사태가 곧 진정 국면에 들어설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날 부산에선 재무건전성이나 영업정지 가능성과 관계없이 곳곳에서 인출 행렬이 이어졌다. 우리(부산)·새누리저축은행(부천)은 2013년까지 자금이 바닥나지 않는 한 영업정지 대상이 아닌데도, 금융당국이 섣불리 ‘실명’을 거론한 탓에 예금인출 ‘유탄’을 맞았다.
■ 우리저축은행, 종일 실랑이… “하이고… 아침 묵고 뛰와 세시간 기다렸는데 내보고 새치기한다꼬….” 몸싸움 끝에 부산 부산진구 부전2동 우리저축은행 ‘입성’에 성공한 조정래(72)씨는 들어서자마자 털썩 주저앉았다. 이른 아침부터 예금자들이 몰려든 이곳은, 셔터를 반만 열어둔 채 지난 금요일에 번호표를 받은 이들만을 선별적으로 은행 안으로 들여보내고 있었다. 조씨가 금요일에 받은 번호표는 ‘770번’이다. 그는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 중에 1000번대도 여럿 있다”고 전했다. 은행 쪽은 이날 처음 은행을 찾은 예금자들에게는 다음달 15일에 찾아오라며 확인 도장을 찍어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날 창구를 찾은 김석동 위원장은 순서를 기다리는 예금자들에게 “우리저축은행은 2013년 6월까지 적기시정조치가 유예된 곳이기 때문에 부실 금융기관으로 영업정지를 받지 않는 곳”이라며 예금 인출 자제를 당부했지만, 한 예금자는 “추가로 영업정지 안 한다고 했지만, 이런 식이면 누가 신뢰하겠느냐”고 항의했다. 김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적기시정조처가 유예됐는데 돈을 찾으러 오는 건 경제적 인식이 안 돼 있는 것 아니냐”며 예금자들을 탓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저축은행 쪽은 당국의 섣부른 발표가 불안을 키운 게 아니냐고 하소연한다. 이 은행 관계자는 “일반인들이 적기시정조처가 무슨 뜻인지 어떻게 알겠느냐”며 “우린 부실 예금기관을 인수한 곳이라서 이걸 제외하면 12월 현재 비아이에스 비율이 5.2%이고, 고정 이하 여신도 6.57%로 건전한 곳인데 이 지경이 됐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이날 예금자들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고 우리저축은행에 2000만원을 예금했지만, 이 은행에선 지난 18일에 이어 이날까지 모두 400억여원이 빠져나갔다.
■ ‘진정이냐, 확산이냐’ 22일 고비 영업정지 ‘폭탄’이 터진 부산은 다른 지역보다 동요가 더 클 수밖에 없었으나, 오후 들어 우리저축은행의 인출 행렬은 줄어들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7일 부산·대전저축은행 영업정지 이후 부산지역 10개 저축은행(부산·부산2 제외)에서 사흘 동안 1800억여원이 빠져나간 것으로 집계했다. 부산은 전통적으로 제2금융업이 발달한 도시다. 최근 5개 계열사가 모두 문을 닫은 부산저축은행그룹은 부산 제2금융권의 ‘대부’ 구실을 해왔다. 부산저축은행과 부산2저축은행의 수신고객은 모두 33만여명으로 부산 인구(350만명)의 10%에 육박한다. 이진복 한나라당 의원은 “부산은 외환위기 때 동남은행이 무너지는 등 제1금융권이 약해 대부업과 같은 제2, 제3 금융업이 발달해왔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1999년 고금리를 미끼로 부산지역 3만여명의 고객으로부터 800억여원을 받아 가로챈 ‘삼부파이낸스 사건’의 악몽이 되살아나면서 불안심리를 자극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석동 위원장은 이날 부산상공회의소에서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어, 예금 가지급금 지급 시기를 앞당기는 내용 등을 뼈대로 한 예금자 지원책을 발표했다.
금융당국은 이날과 22일을 기점으로 예금 인출 움직임은 진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부실은행이 솎아져 불확실성이 해소된데다 개별 저축은행의 자구노력이 이뤄지고 있다는 게 주요 근거다. 새누리저축은행은 이날 대주주인 한화그룹이 300억원을 출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쪽에선 최근 정기예금 금리를 적극적으로 올려, 우량 저축은행에는 예금이 몰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대부분 저축은행은 별문제가 없는 상황”이라며 “예금자들의 불안감은 조만간 진정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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