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사전협의 시인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1월 언론에 공개하려 했던 ‘2010년도 하도급거래 서면 실태조사 결과’를 청와대 쪽에서 막아 발표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한겨레> 1일치 3면) 이는 그동안 공정위가 대-중소기업 부당 하도급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연례적으로 발표해온 실태조사 결과로, 공정위의 ‘청와대 눈치보기’가 도를 넘어섰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이런 사실은 8일 박선숙 의원(민주당)이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애초 1월24일에 언론에 브리핑하겠다고 했던 하도급거래 실태조사 결과를 예정대로 발표하지 않았다”며 “이 과정에서 청와대와 협의가 있었느냐”고 공정위에 따져묻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실제로 공정위는 1월24일에 지난해 실시한 하도급거래 서면 실태조사 결과에 대해 출입기자들에게 설명할 예정이었다. 공정위는 브리핑 예정 사흘 전인 1월21일에 이런 보도 계획을 출입기자들에게 알렸지만, 하루 전날인 23일 밤에 돌연 취소 통보한 바 있다. 당시 공정위 쪽은 “실태조사가 한참 전에 시행된 것이어서 지금 공개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는 석연찮은 해명을 내놓았지만, 사실은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했던 것이다.
김성하 공정위 기업협력국장은 정무위에서 “2010년도 조사이지만 2009년 하도급거래에 대한 내용이라서 너무 발표 시점이 늦어 언론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봤다”며 “그래서 청와대에 파견된 (공정위 출신) 행정관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말해, 청와대 쪽과의 협의 사실을 인정했다. 이어 박 의원이 “청와대 쪽과 협의 결과 발표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이야기가 된 것이냐”고 묻자, 이 역시 부인하지 않았다.
청와대 쪽이 실태조사 결과 공개에 반대한 데는 이명박 정부 출범 뒤에 대-중소기업 간 하도급거래에서 불공정 관행이 더 심화한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동반성장을 핵심 국정 과제로 삼고 있는 현 정부의 이미지에 손상을 가져온다고 판단한 셈이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달 일부 의원들이 하도급거래 실태조사 결과의 공개를 요청하자, 2월23일에야 공정위 누리집 한구석에 슬그머니 자료를 올려놨다. 공정위 관계자는 “청와대 반대로 언론 브리핑이 무산됐지만, 하도급거래 실태조사 결과는 해마다 발표해온 것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공개할 필요가 있어서 홈페이지에 올리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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