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하도급 실태’ 발표 제동
10년째 공개했는데 지난해만 건너뛰어
“대통령 관심사만 챙기는 김동수 체제
재벌감시는 손놓고 물가에 올인” 비판
10년째 공개했는데 지난해만 건너뛰어
“대통령 관심사만 챙기는 김동수 체제
재벌감시는 손놓고 물가에 올인” 비판
공정거래위원회의 하도급거래 실태조사 결과 발표가 청와대 쪽 만류로 제지당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올해 들어 ‘대통령 코드 맞추기’ 행보로 일관해온 공정위의 정체성 논란이 다시 가열될 전망이다. 올해 1월 김동수 위원장 취임 뒤 공정위는 경제력 집중 억제나 부당 하도급거래 관행 개선 등 본연의 업무는 뒷전으로 미뤄둔 채 대통령 관심사항인 ‘물가 잡기’에만 총력을 기울여왔다.
애초 공정위는 하도급법 제22조를 근거로 1999년부터 해마다 하도급거래 서면실태조사를 벌여왔다. 연간 4억~5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원청 대기업과 하청 중소기업 10만곳가량을 대상으로 하는 방대한 규모의 조사로, 대기업의 하도급법 위반 여부와 하도급대금 지급 실태, 서면계약 여부 등이 핵심 조사 항목이다. 공정위는 해마다 5~7월께 조사한 실태를 7~8월에 언론에 공개해왔으며, 법 위반 혐의가 짙은 기업은 따로 현장조사까지 벌여 과징금 부과 등 제재를 해왔다.
그러나 유독 지난해에만 실태조사 결과가 공개되지 않았다. 당시 공정위 간부들은 “동반성장 대책을 수립하느라 업무가 많아져서 분석이 늦어졌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조사 결과에 대한 분석은 연말이 다 돼서야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늦게나마 올해 1월에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었지만, 청와대가 이를 무산시켰다. 대통령의 국정과제로 추진해온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환경이 이전보다 더 악화된 것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2009년 하반기 하도급거래에 대해 조사한 2010년도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하도급법 위반 혐의 업체 비율이 47%로 한해 전보다 4.1%포인트나 높아졌고, 하도급 대금을 현금성으로 결제한 대기업의 비율은 한해 전보다 0.3%포인트 줄어들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동반성장 대책의 첫 출발점은 현장의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인데 이런 실태조사 결과조차 은폐하려 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청와대가 일일이 관여하는 게 많은 것도 문제지만 아무리 대통령이 강조하는 국정과제라고 해서 공정위가 이렇게까지 눈치를 봐서야 되겠느냐”고 비판했다.
근본적으로 이번 사안은 이른바 ‘경제검찰’로서 독립성이 요구되는 공정위가 지나치게 대통령 관심사항만 챙기는 행보를 보여온 데서 비롯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정위가 지난 1월3일 김동수 위원장 취임 직후 ‘물가 잡기’ 업무에 조직과 인력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김 위원장은 연초 이명박 대통령이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하자마자, ‘가격불안품목 감시·대응 태스크포스’를 설치하고 시장감시국, 카르텔조사국, 소비자정책국 등 기간 조직을 모두 물가감시에 집중하도록 개편한 바 있다. 공정위가 물가관리 기구로 전락함에 따라, 본연의 업무인 재벌감시와 경쟁촉진 등의 과제가 방치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 이유다.
더구나 김 위원장은 이번에 문제가 된 하도급거래 서면실태조사 결과 발표 건에 대해서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8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박선숙 의원(민주당)이 “공정위가 일일이 청와대의 지침을 받아서 일을 하는 것이 정상적이냐, 관련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고 묻자, “통상 보도자료 배포 계획은 실·국장 책임하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보고를 받지 못했다”며 금시초문인 것처럼 답변했다. 공정위가 해마다 정기적으로 벌여온 대규모 실태조사에 대한 결과 발표인데도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셈이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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