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개인이 개별적으로 가입하는 개인연금에도 기업과 정부가 보험료 지원을 하도록 하는 연금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한 시민이 국회의사당·빅벤과 연결돼 있는 런던 웨스트민스터 브리지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내년 5인이상 기업 의무화
2016년 자영업자까지 확대
중기노동자 노후 도움 목적
기업들 반대에도 개혁 박차
2016년 자영업자까지 확대
중기노동자 노후 도움 목적
기업들 반대에도 개혁 박차
‘연금 개혁’ 영국을 가다
지난 13일 영국 런던의 금융 중심가인 ‘시티 오브 런던’. 이곳에서 한 금융회사 소속 회계사로 일하는 마크 베이컨(52)을 만났다. 그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노후 준비를 걱정하고 있었다. “30~40대엔 아이들 교육비를 마련하느라 제대로 노후 준비를 하지 못했죠. 영국에선 기초국민연금으로 1주일에 100파운드(17만5000원) 정도 나오는데, 그 정도로는 살인적인 물가의 런던에서 버스도 타고 다니기 어려울 금액입니다.” 그는 “다행히 정부가 최근 연금개혁을 진행중인데, 여기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국 정부가 내년부터 시행하는 연금개혁의 가장 큰 목표는 ‘연금 양극화’를 막는 것이다. 영국 정부는 대기업에 견줘 중소기업 노동자의 노후 준비가 부족하다고 판단해 강제형 연금제도를 마련했다. 개인연금계좌(Personal Account)가 바로 그것이다. 영국에선 내년부터 5인 이상 기업의 모든 직원은 의무적으로 개인연금계좌에 들어야 한다. 기업주와 정부가 보험료의 절반을 분담한다. 직원이 급여의 4%를 내고, 나머지 4%는 기업주(3%)와 정부(1%)가 부담한다.
영국은 1908년 세계 최초로 기초연금(우리나라의 국민연금) 제도를 도입한 뒤, 이번에 새로운 형태의 연금제 도입을 진행중이다. 영국의 연금제도는 국민 누구나 가입하는 기초연금, 기업이 직원의 노후를 책임지는 퇴직연금, 개인이 개별적으로 가입하는 개인연금으로 나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정부와 기업은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의 일정 부분을 분담한다. 하지만 이번에 영국 정부가 도입하는 개인연금계좌는 개인연금에도 정부와 기업이 지원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우리나라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개인연금이 뒤섞인 ‘복합 개인연금’인 셈이다.
물론 기업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영국보험자협회(ABI)의 플로라 로즈 정책담당관은 “소규모 기업 노동자들의 연금 가입 활성화가 예상되지만 기업이 부담하는 비용 증가도 상당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영국 정부는 내년에는 일단 5인 이상 소기업부터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하고, 2016년까지 단계적으로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영국 정부가 연금개혁에 나서는 까닭은 무엇일까. 기대수명은 점점 늘어가는 반면 국민연금은 기금 고갈이 우려되는 등 국민연금만으로 노후 대비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영국의 기초연금 소득대체율(2009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인 33.5%다. 은퇴 뒤 공적연금으로 받을 수 있는 수입이 퇴직 전 급여의 33.5%에 그친다는 얘기다. 미국(40.8%), 독일(43.0%), 프랑스(53.3%)는 물론 오이시디 평균치(59%)와 비교해도 현저히 낮은 수치다.
영국의 연금개혁은 남의 일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도 42.1%(2009년)로 오이시디 평균보다 17%포인트 가까이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2005년 도입된 우리나라의 퇴직연금제도는 매년 100% 넘게 덩치를 키워 올해 4월 기준 누적적립금이 32조원을 돌파했지만, 가입자 대부분이 대기업에 한정돼 정작 노후 대비가 부실한 영세사업장이나 저소득 계층은 퇴직 이후가 막막한 상황이다. 고용노동부 자료를 보면, 올해 4월 말 기준 500인 이상 사업장의 57%가 퇴직연금에 가입했지만 10인 미만 사업장 가입률은 4.6%에 그친다.
헤일리 스팀슨 아비바생명 본부장은 “고령인구가 급속히 늘며 공적연금 고갈 속도가 빨라지는 위험에 직면한 유럽 국가들이 일제히 연금개혁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런던/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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