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중은행에 예금계좌를 보유한 ㄱ씨는 지난해 2월 인터넷 뱅킹을 하다가 내역 확인이 안되는 자신의 계좌를 발견했다. 그는 은행 창구를 찾아 확인을 요청했지만, 계좌 잔액이 ‘0’이라는 안내만 받았다. 그는 며칠 뒤 집에서 찾은 자신의 통장을 제시하고서야 467만원을 환급받을 수 있었다. 은행은 이미 2012년에 ㄱ씨에게 별도 통보도 없이 예금액 전액을 은행 ‘잡수익’으로 돌리고는 계좌 잔액을 ‘0’으로 만든 상태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은행은 일반적으로 5년간 거래가 이뤄지지 않은 계좌는 예금청구권이 소멸된 휴면예금으로 간주해 ‘잡수익’ 등으로 처리하고 있다. 2007년 9월부터 2013년까지 17개 시중은행에서 휴면예금 처리한 금액만 5744억원(3113만 계좌)이다.
문제는 예금주 본인의 입출금 거래가 5년간 이뤄지지 않았더라도 정상적으로 은행에서 이자가 지급되는 한 이를 휴면예금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2012년에 나왔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은행은 부당하게 삭제한 계좌 정보를 복구하는 것은 물론, 판결 이후 발생하는 ‘5년 무거래’ 계좌에 대해서는 소멸시효를 중단시키는 등 예금주 보호 조처를 취해야만 했지만, 실제 집행은 이뤄지지 않았다. 은행을 규제·감독해야 할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손을 놓고 있었던 탓이다.
감사원은 12일 “은행들이 소멸시효 중단을 위한 조처를 취하지 않는 바람에 판결 뒤인 2012년 9월부터 2013년 12월 사이에도 1055억여원이 추가로 소멸시효가 완성되는 등 예금주 재산권 침해가 계속 발생해온 것으로 최근 감사에서 드러났다”며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에게 즉각 예금주 권리 보호 방안을 마련하도록 통보했다”고 밝혔다.
손원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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