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액 1만~5만 미만 계좌
2년 거래없으면 자동 폐쇄
대포통장 규제 강화로
되살리는 절차 까다로워져
급여명세서 등 여러 자료 필요
일부 소비자들 불만
당국 “범죄악용 방지 위해 불가피”
2년 거래없으면 자동 폐쇄
대포통장 규제 강화로
되살리는 절차 까다로워져
급여명세서 등 여러 자료 필요
일부 소비자들 불만
당국 “범죄악용 방지 위해 불가피”
직장인 박아무개(33)씨는 최근 한동안 쓰지 않던 은행 계좌에 돈을 입금하려다 곤란한 상황에 직면했다. 4년 전까지 이용하던 통장이었는데 직장을 옮기면서 주거래 은행을 바꾸다 보니 쓰지 않게 된 계좌였다. 잠시 여윳돈이 생겨 자금 관리에 활용하려 옛 계좌번호를 확인하고, 인터넷뱅킹을 시도했으나 돈이 입금되지 않은 것이다. 은행에 확인했더니 “일정 기간 입출금 등 내역이 없어 거래를 중지시켰다. 차라리 계좌를 해지하고 남은 돈은 다른 통장으로 옮기는 게 어떻겠느냐”며 “그래도 그 계좌를 되살리고 싶으면 거래 목적을 입증할 수 있는 서류를 가져와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박씨는 “이미 쓰던 계좌를 다시 사용하는 것도 이렇게 복잡할 줄 몰랐다”며 “남는 돈을 저축할 용도라 낼 만한 서류도 없어 포기했다”고 말했다.
최근 은행들이 통장 개설뿐만 아니라 이런 ‘장기 미사용 계좌’를 되살리는 절차도 까다롭게 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장기 미사용 계좌를 대포통장의 온상으로 꼽으면서 재개설 요건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은행들 약관을 보면, 잔액이 1만원 미만인 경우 1년 이상 입출금 내역이 없으면 거래를 중지시킨다. 잔액이 1만~5만원 미만인 경우는 2년, 5만~10만원 미만은 3년이 기한이다. 이를 되살리려면 새 계좌를 만들 때에 갖춰야 할 수준의 증빙서류가 필요하다.
앞서 은행들은 지난해부터 새 통장을 만들려는 고객에게 급여 통장인 경우는 재직증명서나 급여명세서, 동호회 회비 관리 통장은 회원 명부나 회칙 등을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또 아르바이트 계좌는 고용자 사업자등록증이나 근로계약서, 공과금 계좌는 영수증 등으로 증빙을 해야 한다. 깐깐해진 계좌 개설 요건 탓에 ‘통장 고시’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다.
주민등록증 하나만으로도 계좌 개설이 가능하던 때에 익숙한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한 은행 관계자는 “계좌 되살리기 절차를 강화하면서 일부 소비자들은 창구 직원들한테 목소리를 높이며 항의하는 일도 잦다”고 말했다. 그래서 일부 은행은 입증 서류를 구비하기 어려운 이들에 한해 하루 거래 한도를 30만원 이하로 제한한 뒤 거래 정지를 풀어주기도 한다.
일부 소비자들의 불만에도 금융당국은 물러설 수 없다는 태도다. 금융위원회 자료를 보면 1인당 은행 계좌 수는 평균 5개가 넘는다. 전체 요구불 계좌의 30%가량이 장기 미사용 계좌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렇게 방치된 계좌는 범죄에 악용될 우려가 있는 것은 물론 은행들한테도 관리 비용을 늘리는 부담이 된다.
이런 이유로 금융당국과 은행들은 앞으로도 미사용 계좌를 되살리기보다 차라리 해지를 택하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지금까지는 은행 창구를 방문해야 해지가 가능했으나 전화나 온라인 등을 통해서도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방치되고 있는 계좌 정보가 유출돼 범죄에 악용되는 걸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해지 절차 간소화를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박승헌 기자 abc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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