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고객 잡기’ 점포 변신
체감 대기시간 줄이려 커피숍 두거나
대학 인근지점엔 스터디 공간 마련
카카오 캐릭터 꾸며 호기심 유도도
2010년대초 IT점포처럼 1회성 우려
체감 대기시간 줄이려 커피숍 두거나
대학 인근지점엔 스터디 공간 마련
카카오 캐릭터 꾸며 호기심 유도도
2010년대초 IT점포처럼 1회성 우려
‘고객 만족은 곧 창구 대기시간 단축이다.’
1990년 초·중반까지만 해도 시중은행들은 이런 구호를 내걸고 ‘1분 싸움’을 벌였다. 공과금 납부부터 입·출금 등 모든 은행 업무가 창구에서 이뤄지던 때였다. “아무리 좋은 금융상품을 개발해도 고객을 오래 기다리게 하면 허사”라는 말이 통용될 때라 대기시간 단축은 은행 영업의 핵심이었다. 소매금융의 강자였던 케이비(KB)국민은행마저도 1993년 상반기엔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설치된 점포가 15곳에 그치던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은행들은 혼잡을 줄이기 위해 창구를 최대한 벽 쪽에 붙여 소비자들이 대기하는 공간을 늘리는 등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1994년 당시 조흥은행(현 신한은행으로 통합)은 어느 요일, 어떤 시간에 점포가 가장 붐비는지를 조사한 ‘내점 고객 지수’를 만들어 지점 안에 걸어두고 소비자들이 혼잡한 시간을 피할 수 있게 했고, 평화은행(현 우리은행으로 통합)은 각종 전표 양식을 통합해 이를 분류하는 시간이라도 줄여보려 했다. 인터넷·모바일 뱅킹까지 등장해 은행 거래의 대부분이 창구 밖에서 이뤄지는 지금은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최근에는 갈수록 방문객이 줄면서 예전과 정반대로 남아도는 공간이 골칫거리가 됐다. 그래서 은행들은 젊은층을 사로잡고,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거점으로 점포를 변신시키는 등 새로운 형식의 지점을 만드는 실험에 나서고 있다.
우리은행이 지난달 서울 동부이촌동에 문을 연 ‘카페 인 브랜치’가 그중 하나다. 은행 창구 안에 커피숍을 둔 복합점포로 음악과 커피향으로 안락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해 체감 대기시간 등을 줄이려는 목적이다. 우리은행 쪽은 “점포를 한 번이라도 더 찾게 유도하고 은행 업무와 무관하게 커피숍을 방문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잠재 고객인 젊은층을 끌어들이고 기업 이미지를 높이려는 의도도 있다. 국민은행은 한양대, 숙명여대 등 대학 근처 14개 점포를 대학생 특화 지점으로 만들어 무료로 세미나와 스터디 등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꾸몄다. 이른바 ‘락스타’(樂star) 지점(존)이다. 20~30대 거래고객을 겨냥한 만큼 지점에 주로 젊은 직원을 보내고 복장도 캐주얼하게 입도록 했다. 최근에는 락스타 블로그 등을 운영하면서 온라인과 연계한 마케팅 활동에 나서고 있다.
신한은행도 터치스크린으로 금융 상품을 살펴볼 수 있게 하는 등 무인점포 기반의 젊은층 전용 점포인 ‘에스(S)20 스마트존’을 대학 주변에서 두고 대학생들을 ‘명예 지점장’으로 선발하기도 했다.
점포를 아예 특정 캐릭터로 꾸민 경우도 있다. 케이이비(KEB)하나은행은 지난해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서울 홍익대 앞 서교동 지점을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로 뒤덮었다. 카카오톡을 통해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네오’와 ‘프로도’ 같은 캐릭터로 내·외관을 꾸며 호기심을 유도한 것이다.
중국인 관광객이 몰리는 명동 등에 한류 스타의 사진을 내걸어 관심을 끌거나, 지점에 외국인 노동자 전용 쉼터를 두는 특화 점포도 존재한다. 우리은행은 필리핀인들이 많이 찾는 서울 혜화동 지점이나 몽골 타운이 있는 서울 광희동 지점에 이들 나라에서 구입한 음악 시디(CD)나 영화 디브이디(DVD) 등을 갖춰 놓고 이용할 수 있게 한다.
은행 지점들의 변신 시도는 계속되고 있으나 아직까진 경쟁력을 확보할 만한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미 2010년대 초반 각 은행들은 정보기술(IT)을 접목한 ‘스마트 브랜치’ 점포를 너도나도 내놓았지만 인터넷뱅킹과의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미술품 전시 등 문화를 접목한 은행 점포로의 변신을 꾀했던 지점들도 보여주기에 그치며 명맥을 이어가지 못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소비자들의 수요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면, 최근 시도하고 있는 다양한 복합점포 개설 시도 역시 ‘일회성’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승헌 기자 abcd@hani.co.kr
우리은행 ‘카페 인 브랜치’
국민은행 ‘락스타’
하나은행 서울 서교동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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