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에 웃고 우는 외환시장의 큰손들
‘1143.50, 1143.60, 1143.50, 1142.40.’
지난 14일 서울 중구 을지로 케이이비(KEB)하나은행 외환거래실 벽면에 붙은 대형 화면 속 숫자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외화와 주식·채권을 사고파는 딜러와 자금관리, 영업을 맡은 직원 100여명이 모여 있는 곳이다.
1초 단위로 변하는 원-달러 환율을 보여주는 이 화면 옆에 유로·엔화 등 각종 통화의 환율을 보여주는 대형 모니터들도 빠르게 숫자를 바꿔갔다. 딜러들은 책상 위에 놓인 5~6개의 개인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로이터>나 <블룸버그> 등 해외 통신사들이 내보내는 시장 정보부터 각종 환율 변동 추이가 쏟아졌다. 주문이 들어오면 순식간에 ‘억’ 소리 나는 거래가 끝나기 때문에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
“5개 보트(Bought)!”
영업부에서 외침이 울린다. 누군가 500만달러를 사겠다고 거래를 요청해온 것이다. 1개는 100만달러다. 월 50만달러 이상 거래하는 개인이나 기업이 하나은행 외환거래실 영업부에 외화를 사거나 팔기를 요청하면 외환파생상품영업부에서 일하는 외환딜러가 거래를 맡는다.
“3.5!”
담당 딜러가 단말기 화면에 뜬 환율을 보고 끝자리 숫자를 부른다. 환율이 1143.50원이라면 ‘3.5’라고 말하는 식이다. 거래 상대방에게 의사를 묻고, 상대방이 동의하면 영업부에서 “던!”(완료)이라고 다시 답한다. 딜러가 단말기에 금액을 입력하면 거래가 끝난다. 이원섭 하나은행 자금운용본부 차장은 “수십억이 오가는 데 3초가 안 걸린다. 이 짧은 시간 동안에도 환율이 바뀌어 최종 거래 금액이 바뀌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일반인이 환전을 하는 순간에도 그 환율을 결정하는 외환시장은 쉴 새 없이 돌아간다. 공항이나 은행 지점에서 이뤄지는 개인들의 소액 환전도 이 환율에 영향을 주지만, 그보다 훨씬 영향력이 큰 것이 딜링룸 등에서 이뤄지는 ‘큰손’들의 거래다. 이곳에서 이뤄지는 하루 거래량은 많게는 수백조원에 이른다. 하나은행 외환거래실에서만 딜러 한 명이 하루에 맡는 달러 거래량이 우리 돈으로 10조원을 넘기기도 한다. 유로화나 엔화 거래를 합치면 액수는 더 커진다. 이런 거래가 모여 매일 오후 3시면 발표되는 고시환율 등이 결정된다.
찰나에 환율이 오르내리기 때문에 외환 딜러들에게 특히 중요한 건 자신이 지금 외화를 사는지 파는지 혼동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환율 변동에 따른 득실이 극명하게 갈리는 탓이다. 환율은 상승이나 하강의 방향성을 갖고는 있지만 그 안에서도 지진파 그래프처럼 요동치며 오르내리는 무수한 변동이 있다 보니 딜러들한테는 매도·매수 주문을 내는 ‘타이밍’을 파악하는 감각이 중요하다. 고도의 집중력과 관찰력, 예측능력을 가지고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해내는 사진예술을 ‘순간의 미학’으로 표현하듯 딜러들도 외환거래를 “순간의 미학이 발휘되는 직업”이라고 설명한다.
신상섭 외환파생상품운용부 대리는 “딜러의 개인 특성에 따라 수백억원을 한 번에 거래하거나 이를 잘게 쪼개 여러 차례 거래하는 방식을 선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환딜러들은 200여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옛 외환은행 시절부터 외환딜러를 양성해온 하나은행은 내부공모를 통해 직원을 선발하고 교육을 한다. 이 과정을 거친 이들로 인력풀을 만들고 여기서 외환딜러를 뽑는다.
박승헌 기자 abc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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