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보험사 떠넘기기에 환자들만 애먼 피해
의사들은 환자에게 권유하는데
실손보험사들 심사 까다롭게
불명확한 기준으로 보험금 거부도
도수치료 안 받겠다는 각서 요구도
“과잉진료 책임, 소비자에게 넘기나”
의사들은 환자에게 권유하는데
실손보험사들 심사 까다롭게
불명확한 기준으로 보험금 거부도
도수치료 안 받겠다는 각서 요구도
“과잉진료 책임, 소비자에게 넘기나”
최근 허리를 다친 이아무개(37)씨는 정형외과를 찾았다가 의사로부터 ‘도수치료’(맨손으로 하는 통증치료)를 권유받았다. 지난해에도 어깨를 다친 뒤 도수치료 효과를 본 이씨는 의사의 권유에 따라 이번에도 서른번의 도수치료를 받고 실손보험금을 신청했다. 하지만 보험사는 “제3의 의료기관에 의뢰했더니 치료 목적으로는 7~8회만 받으면 된다고 하더라. 그 이상은 치료 목적으로 볼 수 없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이씨는 “의사는 치료를 받으라고 진단서를 끊어주고, 보험사는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하면 환자는 어쩌란 말이냐”고 말했다.
최근 실손보험 손해율 급등 주범의 하나로 도수치료가 꼽히면서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 심사를 대폭 강화하고 나섰다. 하지만 의사들은 여전히 도수치료를 권하는 상황이라 중간에서 보험금을 받지 못한 소비자들의 불만과 민원도 증가하고 있다.
18일 보험업계의 설명을 종합하면, 올해 들어 보험사들은 불필요한 도수치료를 권장하는 ‘문제 병원’의 명단을 공유하고 의사의 진단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도 제3의 의료기관에 자문을 거치는 등 심사를 강화하고 나섰다. 의사의 진단서만 있으면 무조건 도수치료 보험금을 지급하던 과거 관행에 변화를 주고 있는 것이다. 한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중소형 병원들이 수익 확보를 위해 환자에게 무차별적으로 도수치료를 권하는데 이를 막을 수단이 사실상 없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과잉 진료 사례’를 걸러낼 수밖에 없어 올해 들어 심사를 강화했다”고 말했다. 실손보험 손해율은 2009년 103.3%에서 2010년 106.4%, 2011년 109.9%, 2012년 112.3%, 2013년 119.4%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문제는 ‘과잉 진료’를 걸러내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데 있다. 이런 문제는 보험사들도 인정한다. 한 생명보험사 관계자는 “예를 들어 특정 문제 병원에서 도수치료를 과도하게 받았다던가, 일정 기간 동안 여러 차례 도수치료를 받았다든가 하는 사람의 경우 심사를 깐깐하게 하는 식이다. 그렇다 보니 보험사별로 심사 기준이나 대상이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보험업계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띤 외부 전문기관에 심사 기준 등을 의뢰하려고 하나 사정이 여의치 않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외부 기관을 통해 실손보험료 심사 기준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지만, 의료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안다. 기준이 빨리 마련되지 않으면 보험금 지급 관련 민원은 앞으로도 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도 최근 실손보험 표준화 문제 등을 포함한 ‘20대 금융관행 개혁과제’를 선정하고 태스크포스를 꾸렸지만, 단기간에 해법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의사의 권유를 거절하기 힘든 환자 입장에서는 ‘병원’과 ‘보험사’ 사이에서 애먼 피해를 당하기도 한다. 최근 도수치료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한 김아무개(48)씨는 “약관을 들이밀며 보험사에 따지자 ‘이번까지는 지급할 테니, 다음부터는 도수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라’는 황당한 답변을 들었다”며 “병원이 과잉 진료를 일삼는 것이라면 보험사와 병원이 해결할 문제지 그 피해를 왜 환자에게 전가시키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비자단체들 역시 보험사가 시장 선점을 위해 보험상품의 보장을 과도하게 설계해 놓고 손해율이 높아지자 뒤늦게 보험료를 올리거나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건 무책임한 행태라고 지적한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