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구멍가게에서 껌 한 통도 카드로 살 수 있는 시대에 유독 생명보험사들만이 보험료의 카드 결제를 기피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세금·공과금·아파트 관리비는 물론 월세까지 ‘신용카드 납부’가 가능한 요즘, 유독 생명보험사들만이 보험료 카드 납부를 기피하면서 불만이 커지고 있다. 상당수 생보사들은 아예 카드 납부를 원천봉쇄하고 있는데다 카드 납부가 가능했던 일부 보험사마저 수수료 부담을 이유로 카드 결제를 거부하고 나섰다.
미래에셋생명은 오는 8월부터 보장성 보험을 제외한 연금·저축성 보험료의 카드 납부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22일 밝혔다. 앞서 케이디비(KDB)생명은 지난 4월부터 삼성카드 외에 다른 카드로는 보험료를 받지 않고 있다. 한화·교보·아이엔지(ING) 등 6개 생명보험사는 아예 카드 가맹점 계약을 맺지 않고 있다. 업계 1위인 삼성생명도 만기환급금이 없는 순수 보장성 상품에 한해 삼성카드 결제만 허용하고 있는 상태다. 생명보험협회 통계를 보면, 지난 1~2월 납입된 보험료(2회차 이상) 중 신용카드로 결제된 비중은 2.9%에 불과했다.
생보업계는 저금리로 인한 수익 악화에다 과거에 판매한 고금리 확정형 상품 때문에 역마진이 발생해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태도다. 또 기준금리가 1%대로 떨어진 마당에 2~3%에 이르는 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내는 건 지나치게 높다는 주장이다. 미래에셋생명 관계자는 “계속되는 저금리로 인해 자산운용 수익률이 떨어지고 있다. 수수료라도 아껴 사업비를 절감하자는 차원에서 (카드 납부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마다 수조원대의 순이익을 남기는 생보사들이 수수료 절감을 이유로 보험료 카드 납부를 거부하는 것은 소비자들의 편의를 무시하는 행태라는 비판이 나온다.
금융정의연대 김득의 대표는 “생보사들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3조6000억에 이르는데, 카드 수수료가 아까워 결제방법을 선택할 소비자의 권리를 무시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더구나 국민연금 등 4대보험도 카드 결제가 가능하고, 자동차보험료는 카드 결제시 각종 할인 제도까지 도입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생보사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 생보업계 관계자는 “자동차보험은 1년 만기로 한 번에 결제를 하지만, 생보사 상품은 만기가 길고 매달 결제를 해야 해 수수료 부담이 더 크다”고 항변했다.
금융감독원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달 1일부터 보험사들의 보험료 카드 결제 가능 여부를 보험협회 누리집에 공시해 소비자의 판단을 돕겠다는 방침이다.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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