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이아무개(41)씨는 최근 만기가 도래한 정기예금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또다시 정기예금을 들자니 월급 통장 가산금리 등 모든 것을 더해도 이자가 연 1%대에 불과하고, 주식투자를 하자니 주가가 이미 오를 대로 올라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고민을 하던 중 이씨는 지인의 소개로 달러자산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달러 가치가 지금은 바닥이지만 앞으로 오를 것이라는 조언이었다. 이씨는 결국 은행을 찾아 ‘달러 예금’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달러예금은 앞으로 달러 강세를 기대한다면 환차익을 노려볼 수 있는데다, 세금도 내지 않는다. 다만 예금상품의 금리가 연 0.1% 수준으로 낮고, 환전 수수료 부담을 고려해야 한다.
“달러가 쌀 때 사두자!” 은행 금리가 1%대로 주저앉으며 투자처를 잃은 돈이 최근 달러 자산으로 몰리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100원을 밑도는 등 급락하면서 달러를 싼 값에 사 두려는 수요가 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연내 기준금리를 올리면 달러가 강세로 돌아설 것이란 기대감이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개인의 달러 예금 잔액이 역대 최대 폭으로 증가했다.
한국은행이 17일 발표한 ‘7월 거주자외화예금 동향’을 보면, 지난달 말 현재 외국환은행의 거주자외화예금은 662억3000만 달러로 6월 말보다 22억2000만 달러가 늘었다. 특히 달러화 예금 잔액은 557억4000만 달러로 전달 대비 57억4000만 달러가 늘면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개인의 달러화 예금 역시 한 달 새 10억9000만 달러가 늘어난 81억 달러를 기록해 증가 규모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거주자 외화예금은 내국인과 국내에 6개월 이상 거주한 외국인·국내 외국기업 등이 국내에 외화로 예치한 예금을 말한다.
한은 관계자는 “달러 가치가 하락하자 대기업들이 무역 결제 대금으로 입금된 달러화 등을 원화로 바꾸지 않고 예치해뒀고, 개인의 달러 매입 수요도 큰 폭으로 늘어나면서 달러 예금이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보다는 개인이 훨씬 더 환율의 움직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개인 달러 예금이 특히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에 이어 8월에도 달러 약세가 계속되고 있는데, 예금 변동 폭이 더 커질지 여부는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고 덧붙였다.
케이이비(KEB)하나은행 영업1부 피비(PB)센터 정원기 지점장은 “우리 지점을 기준으로 원-달러 환율이 1130~1140원대에서 고객들이 집중적으로 달러를 매입했다. 여행·유학자금으로 달러를 매입하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투자개념으로 ‘달러 예금’이나 ‘달러 ELS’ 등에 투자하는 젊은 개인 고객들이 크게 늘었다”며 “환율 1070원을 박스권 하단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달러 매입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미 연준 주요 인사한테서 다음달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이 나오면서 증시와 외환시장에 파장이 미쳤다. 월리엄 더들리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16일(현지시각) 폭스 비즈니스 네트워크와의 인터뷰에서 추가 기준금리 인상 시기가 다가오고 있으며, 9월 기준금리 인상 여부에 대해서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는 괜찮은 상황이다. 고용시장은 목표치에 다가가고 있고, 임금 상승이 가속화될 신호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이런 발언의 영향 등으로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6.1원이나 큰폭으로 뛰어오르며 1108.3원으로 마감했다.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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