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부터 겹겹이 쌓여온 잘못된 적폐들을 바로잡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이번 만큼은 소위 ‘관피아’(관료+마피아)등 부끄러운 용어를 우리사회에서 완전히 추방하겠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직후 ‘관피아 척결’을 천명한 지 2년6개월이 지났다. 박 대통령은 “유관기관에 퇴직 공직자들이 가지 못하도록 관련 제도를 쇄신하겠다”고 했지만, 이런 선언이 무색하게 ‘관피아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번엔 손해보험협회 전무에 전 금융감독원 국장이 선임되면서 또다시 ‘금융권 2인자 자리는 관피아용’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오고 있다.
손해보험협회는 최근 11월1일부로 서경환(59) 전 금융감독원 국장을 손해보험협회 전무로 선임했다. 21개월간 공석이던 전무 자리에 다시 낙하산이 내려앉은 것이다.
이번 인사는 적지 않은 논란을 부르고 있다. 손보협회는 박 대통령의 천명 이후 정부 관료가 협회 요직에 낙하산으로 오는 관행을 막겠다며 협회회장에 민간기업 출신의 전문경영인을 선임하고 부회장직을 없앤 바 있다. 하지만 오랜 공석 끝에 ‘내정설 논란’이 불거진 서 전 국장을 임명했다. 결국 ‘부회장’에서 ‘전무’로 이름만 바꿨을 뿐, 그 자리는 여전히 금융 당국 출신들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낙하산 행렬은 앞서 다른 금융기관에서도 계속 됐다. 지난 8월 생명보험협회 전무에는 송재근 전 금융위원회 과장이 임명됐다. 한국거래소 이사장에는 정찬우 금융위원회 전 부위원장이 선임됐고, 한국증권금융에는 감사로 조인근 청와대 전 연설비서관이, 부사장에는 양헌근 금감원 부원장보가 선임됐다. 은행연합회 역시 전무에 재정경제부·금융위 출신 홍재문 전 한국자금중개 부사장을 임명했다. 지난해에도 마찬가지였다. 금융투자협회는 지난해 3월 청와대 선임행정관 출신인 한창수 전무를, 9월에는 미래창조과학부 우정사업본부장 출신 김준호 자율규제위원장을 앉혔다.
현재 공모가 진행 중인 신임 보험개발원장 자리에도 성대규 전 금융위 국장이 단독 지원해 뒷말을 낳았다. 보험업계 일부 인사가 응모를 저울질 했지만 성 국장 내정설이 돌면서 중도 포기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한 쪽에서는 정피아(정치권+마피아)보다는 그나마 전문성이 있는 관피아가 다수인 금융권은 상황이 나은 편이라는 말도 나온다. 일부 협회는 ‘금융당국과의 원활한 협조’ 등을 이유로 관피아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결국 회장이 민간 출신이니 전무 자리라도 내놓으라는 요구 아니겠냐. ‘당국과의 협조’ 운운은 낙하산을 내리꽂을 때 흔히 대는 변명일 뿐”이라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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