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월 23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한은은 당장 금리를 내릴 수도 올릴 수도 없다. 금리를 인상할 수 있을 만큼 연내에 경제가 회복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16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가운데 올 연말 한-미 기준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자 한국은행 고위 관계자가 한 말이다. 이는 한은이 처한 딜레마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연준이 2019년까지 해마다 세차례씩 점진적 금리 인상을 하겠다는 명확한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1300조가 넘는 가계부채에 짓눌리고 바닥을 기는 경기에 발목이 잡힌 한은은 사실상 선택지가 별로 없다.
한은은 지난해 6월 이후 기준금리를 1.25% 수준에서 ‘장기 동결’ 중이다. ‘소비절벽’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국내 경기침체를 생각하면 금리를 인하해서 경기 부양에 나서는 게 맞는 방향이다. 하지만 과도한 가계부채에 발목을 잡힌 상황에서 이 카드는 쓰기가 어려운 형국이다. 가계부채의 연착륙을 유도하기 위해선 금리를 점진적으로 인상할 필요가 있다. 한은은 현재 경기침체와 가계부채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져 있다.
여기에 미국 기준금리 인상 요인까지 겹쳤다. 한-미 금리 차가 0.25%포인트까지 좁혀졌고, 연말이 되면 역전이 될 수 있다. 내외금리가 역전되면,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갈 위험이 있다.
그러나 한은은 이번 미국 금리 인상의 여파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당장 미국에 동조해 금리를 올리지는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장병화 한은 부총재는 이날 열린 통화금융대책반회의 직후 “이번 금리 인상은 충분히 예견돼 금융시장 변동성이 높아질 우려는 크지 않다”며 “미국이 금리를 올렸다고 한은이 기준금리를 기계적으로 올리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한국 외환보유액이 사상 최대인데다 단기외채 비중도 작아 외환 건전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내외금리가 역전된다고 해도 급격한 외국인 자금 유출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결국 한은의 통화정책은 금리 인하보다는 인상 쪽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고, 그 시기는 연말이나 내년 초쯤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까지 금융당국과 공조해 취약계층에 대한 소득지원, 제2금융권 부채를 저금리로 갈아탈 수 있는 방안 등 가계부채 대책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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